사람들은 저마다 크고 작은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산다. 마음의 상처로 인해 힘들어하고 고통을 호소하기도 한다. 마음에 상처가 생겼을 때 그것은 칼로 베인 상처보다 더 무서운 고통을 안겨주기도 한다. 트라우마(정신적 외상·충격)다.

추석 전후로 만난 호남 사람들은 이런 얘기를 했다. ‘지진은 경주·부산에서 났는데 호남에 사는 내가 왜 이렇게 불안한지 모르겠다’ 영남권에서 불어온 지진충격이 가까운 호남, 충청, 경기, 서울까지 번져 온 국민이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지난 12일과 19일의 두 차례 경주 지진 경험 후 해당 지역 주민들은 불안증세를 호소하며 청심환 등 신경안정제를 구매, 판매량이 30% 증가하고 있다. 더군다나 21일 일본 혼슈(本州) 남동쪽 이즈(伊豆) 제도 인근에서 규모 6.0의 지진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광주·전남에서도 온라인을 통해 지진비상용품이 들어있는 ‘생존가방’을 주문하는 이들이 많다. 지진이 나면 정부나 지자체가 우리를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불신이 커지면서 ‘내 생명은 내가 지키겠다’는 온라인상의 댓글도 난무한다.

인간의 지혜가 제아무리 발달해서 과학이 자연을 정복하는 시대라 하지만 그 자연이 한번 분노를 터뜨려 재앙을 주는 경우 인간의 힘은 한없이 무력하다. 따라서 지진은 불가항력적이라 철저한 대비만이 피해를 줄인다. 21일 발생한 일본 지진때 5초만에 긴급재난문자가 발송돼 큰 피해가 없는 모양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긴급재난문자가 15분 뒤에야 전송돼 두 번이나 영남지역민들이 우왕좌왕 하며 분통을 터뜨렸다.

더군다나 큰 지진이 두 번 난 경주 인근에는 우리나라 최대 원전 집결지가 있어 온 국민이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필자는 지진뉴스를 지켜보면서 경주 지진의 진앙지에서 27㎞ 떨어진 월성원전, 50㎞ 떨어진 고리원전을 정상가동하며 점검을 실시하고 있다는 뉴스를 보고 무모하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전 환경운동연합은 고리원전에서 사고가 나면 최대 85만여명의 인명피해, 628조원의 경제적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는 모의실험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또한 핵없는광주전남행동은 전남 영광 원자력발전소에서 큰 사고가 난다면 암 사망이 최대 55만명, 경제적 피해액은 451조원이 될 것이라는 모의실험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아직 이런 엄청난 규모 지진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지금 온국민이 느끼는 공포는 최고조다. 재난당국을 믿지 못하는 불신 때문이다. 최근 지진에서 정부나 지자체는 국민 공포를 잠재울만한 심리적 대응을 하지 못했다. 신고건수나 피해상황만 발표했지 현재 발생하고 있는 일련의 지진에 대한 분명한 정보를 알려주고 국민을 안심시키는 정치적 수단을 강구하지 않았다.

지진이란 게, 그 특성상 앞으로 일어날 상황을 미리 알기 어렵다는 점에서 대응에 한계가 있지만, 일본처럼 대응 매뉴얼을 만들고 스스로 생존력을 갖추도록 마음준비를 시키는 것은 지도자들이 얼마든지 미리 할 수 있는 일이다.

지진무풍지대일 것 같은 광주·전남에서도 2000년 이후 지난해까지 총 81건의 지진이 관측됐다. 연평균 5~6차례 지진이 발생한 셈이다. 진동이 감지되는 규모 3 이상 지진이 2000년 이후 총 19차례(규모 4 이상은 4회)나 발생하는 등 중·소규모 지진은 끊이지 않고 있다. 광주에서는 2013년 6월 동구 동쪽 3km지역에서 규모 3.2의 지진이 발생해 시민들이 놀라기도 했다. 그러나 학교나 대형건물의 내진 설계는 충분하지 않은 실정이다. 광주시의회에 따르면 당시 광주지역 전체 내진설계 대상 공공시설물 649곳 중 내진설계가 적용된 곳은 41.4%인 269곳에 불과했다. 2013년 6월 기준으로 광주지역 초·중·고등학교 건물 1천28동 중 내진 설계가 된 것은 200동이 전부였다. 80.5%에 해당하는 828동은 지진에 무방비 상태였다.

현행 지진재해대책법에는 2009년부터 도로, 철도, 공항, 항만, 원자로 등 공공시설·건축물과 민간병원·학교는 내진 설계가 의무화돼 있다. 이 법 시행 이전에 지은 건물은 관리 주체인 공공기관이 계획을 세워 2011년부터 내진 보강을 하고 결과를 방재청에 보고해야 한다. 따라서 지자체장은 건물, 아파트, 학교 등의 내진설계를 보강하고, 감시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특히 사전 대처요령숙지, 정기적인 교육·훈련 시스템이 필요하다. 현재 광주 초·중·고교생은 1년에 6차례, 유치원과 어린이집 원생·원아들은 매달 지진 관련 교육을 받고 있다. 하지만 직장인들과 자영업자 등을 위한 교육은 전무한 상황이다. 지진 발생에서 대피 상황을 이끌어야 할 성인들이지만 기본적인 행동조차 모른다.

안전은 인권의 기본이다. 지진 같은 대형사고로인한 정신적 충격을 다스리는 메뉴얼을 미리 갖고 있어야 한다.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은 상상과 공상을 거치면서 확대돼 망상으로 진행, 정신질환으로 발전한다. 지자체가 트라우마를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치유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 이유다.

최근 일본 6.0강진이 발생했지만 일본 사람들은 우왕좌왕하지 않았다. 10초 이내 경보시스템을 가동한 일본열도를 보고 우리 국민은 ‘지진은 무섭지만 대처하는 일본정부의 능력은 부럽다’고 말했다. 현재 과학기술로는 지진에 대한 단기 예측이 불가능하다. 결국 지진으로 인해 발생되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현실적인 최선의 방법은 최단 시간 내에 정확한 정보에 기초한 초동대처만이 답이다.

자, 광주와 전남에 7.0지진이 났다고 하자. 광주시장·전남도지사는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할까.

/ssnam48@kj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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