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자꾸 ‘사리사욕(私利私慾)’이란 사자성어가 머릿속을 헤집고 있다. 개인의 이익과 욕심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와 비슷한 표현으로 사복(私腹)이란 말이 있다. 공적인 업무를 맡은 자들이 지위를 이용해 개인의 배를 채운다는 뜻으로, 부패한 공직자의 행동 가운데 대표적인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정약용선생은 목민심서에서 ‘청렴은 목민관의 본무요 모든 덕의 근본이니, 청렴하지 않고 목민관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며 공직자의 사리사욕을 경계했다.

요즘 부정한 뇌물의 ‘악취’와 ‘농단’ 오물이 대한민국을 더럽히고 있다. ‘최순실사태’ 여파는 어디를 향할지 예상하기 힘들다. 더군다나 농단의 중심에 있는 자들이 광주의 중요 사업까지 쥐락펴락 했다 생각하니, 수치스럽기까지 하다. 어쩐지, 특별법으로까지 지정돼 있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사업이 이상한 곳으로 흘러간다 싶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어떻게 된 일인지 정작 문을 열자 예산과 인원이 줄면서 제자리를 잡지 못했다. 이제야 그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과 함께 무엇이 원인이었는지 알 것 같다. 비전도, 역할도 아시아문화전당과 판박이인 문화창조융합센터를 만들기 위해 꼼수를 부렸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차은택씨가 주도해 만든 문화창조융합벨트사업은 아시아문화전당과 닮았다. 두 기관은 융복합 교육 문화 콘텐츠를 만들고 창작의 기반을 조성한다는 데 비슷한 목적까지 갖고 있다. 그런데 아시아문화전당 예산은 지난해 724억원보다 20% 정도 줄어든 560억원인 반면 차은택의 문화창조융합벨트 예산은 올해보다 무려 40% 늘어난 1천2백억원대다.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나자 광주민족예술단체총연합 등 지역문화예술단체는 7일 ‘최순실·차은택에 의해 자행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유린을 수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광주문화예술인 시국선언’을 하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마저 이들의 사냥터에 불과했다’고 주장했다. 어떻게 문화예산이 평창동계올림픽 체육예산으로 이동할 수 있는가. 전당 개관을 불과 7개월 앞둔 2015년 2월, 아시아문화전당 측은 갑자기 전시예술감독이었던 이영철 감독을 해임하고 수년을 준비해 왔던 개관 프로젝트를 백지화했다. 전당측은 해임 사유에 대해 ‘외부평가 결과, 창조원 계획 및 콘텐츠 구체성 결여로 인한 개관 일정 차질’이라고 주장했지만 의도된 해임이었다. 이로 인해 개관을 위해 사용된 50억 원이 낭비되고, 준비됐던 콘텐츠가 모두 사장되었으며, 그동안 구축됐던 국내외 문화예술 네트워크가 무너져 버렸다.

정말 지역문화계 주장대로 문화계 황태자 차은택이 김종덕 전 장관의 홍익대 대학원 제자이고, 김 전 장관이 운영했던 회사에서 감독으로 재직한 인연으로 광주와 아시아문화전당을 희생양 삼아 자신들의 사익을 추구해 전당과 광주를 유린했다면, 참을 수 없는 모욕이다. 아시아문화전당 목적은 ‘창작과 제작, 유통을 통한 아시아문화의 허브’, 차은택의 문화창조융합센터는 ‘글로벌 컨텐츠를 기획 유통하는 문화창조융합 컨트롤타워’, 스스로 ‘허브’ ‘컨트롤타워’를 자처할 뿐 사업 내용엔 큰 차이가 없다. 더군다나 문화창조융합센터의 밑그림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창·제작센터 업무를 보던 실무팀장 등 2명이 그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인력을 빼가 급조된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이 결국 아시아문화전당의 예산마저 빼앗아 간 것 아닌가 말이다.

최근에 여론이 거세지자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내년도 최순실·차은택 관련 예산 892억여원을 삭감하기로 했다. 문화창조융합벨트 확산 등 모두 42개 항목 3천385억7천만원 중 24개 항목 892억7천만원(26.4%)을 삭감한다는 계획이다. 문화창조벤처단지 구축 및 운영(555억원 중 192억원 삭감), 문화창조아카데미 조성 및 운영(309억원 중 51억원 삭감), 문화창조융합벨트 글로벌 허브화(169억원 중 145억원 삭감) 등 문화창조융합벨트와 관련된 사업이 많이 포함됐다.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 중 문화창조융합벨트 확산(86억원), 문화창조융합벨트 전시관 구축(36억원), 문화창조융합센터 조성 및 운영(10억원), 문화콘텐츠 국제협력 및 수출기반 조성(10억원) 등은 아예 폐지된다.

상황이 이렇다면, 최순실-차은택 관련 삭감 예산은 당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산과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예산으로 다시 재편성해야 한다. 부당하게 편성된 예산을 전액 삭감하고 원래 목적했던 아시아문화전당 사업 예산으로 되돌리는 게 도리다. 비정상의 정상화다. 비선실세들이 개입, 정부 예산을 두 개의 대형 사업이 나눠가지면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피해를 봤기 때문에, 삭감된 예산을 원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옛전남도청 자리로 5·18광주민주화운동때 광주시민이 대량 총살을 당한 곳이다. 일부 국정농단세력이 이렇게 장난질할 곳 아니다. 당장 오는 2023년까지 5조3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는 7대 문화권 사업은 문화전당권과 아시아문화교류권 등 2개만 추진되고 있을 뿐 나머지 5개는 시작도 하지 못하고 있다.

부패한 공직자와 개인의 사리사욕 때문에 광주의 거대한 문화사업이 기본 생존권마저 위협당한 것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이다. 한낱 사복(私腹)에 휘둘린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사업, 지역 정치권이 바로 잡으라. /ssnam48@kj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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