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만약 광주에서 초·중·고·대학을 나오지 않고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다면 어땠을까. 직장을 광주에서 갖지 않고 다른 지역에서 아들·딸 낳고 살았다면 어떨까. 광주에서 언론인으로 30년을 보낸 대신 다른 지역에서 다른 직업을 갖고 살았다면 어떤 모습일까. 능력에 한계가 있으므로 크게 달라질 건 없었겠지만, 적어도 정신적인 고통은 덜 했으리라. 대학때부터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짊어지고 이런 질곡의 삶, 살지 않았으리라. 하여, 매년 5월이 되면 광주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아간 이들이 밉고 싫어 몸서리칠때도 있었다. 매년 5월 앓는 5월병 때문에 가해자들이 원망스러울때도 많았다.

아직도 광주사람들의 집단 몸살은 진행중이다. 그런데, 그 가해자 중 한사람 전두환이 최근 ‘전두환 회고록’에서 “5·18 사태는 ‘폭동’이란 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광주사태 당시 국군에 의한 학살이나 발포명령은 없었다”는 궤변을 늘어놨다. 또 광주를 살인했다. 더군다나 “수천 명의 사망자는 잘못 알려진 것, 단 165명”이라며 시종일관 ‘광주사태’ ‘5·18 사태’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5·18의 충격이 가시기 전에 대통령이 된 게 원죄가 됨으로써 십자가(제물)를 지게 됐다”고도 했다.

사람의 탈을 쓰고 이렇게 악랄할 수 있는가. 애초 반성이란걸 기대한적 없지만 살인자가 영령들을 두 번 죽이는 작태, 간과할수 없다. 이 주장은 80년이후 진상 규명과 검찰 조사는 물론이고 대법원 판결까지 무시하는 것이다. 대법원은 5·18과 12·12 사건에 대한 확정판결(1997년 4월) 당시 전 전 대통령에 대한 내란 목적 살인 혐의를 인정했다. 감옥에 가서 형을 받고 전직 대통령 예우까지 박탈당한 이가 그 죄목을 뒤집은 것은 내란 살인 범죄자의 거짓망발에 불과하다. 후안무치한 행위다.

더군다나 ‘5·18 발포명령은 없었다’는 주장을 뒤집는 군 내부 기록까지 최근 나온 상황이다. 한겨레신문이 입수해 보도한 육군 제2군사령부 (영호남·충청지역 관할)의 ‘광주권 충정작전간 군 지시 및 조치사항’에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군 자위권 발동을 결정한 국방부 회의와 관련해 손글씨로 ‘장관, 총장, 군사령관, 합수본부장, 수경사령관, 특전사령관, 육사교장(차)’이라고 돼 있다. 이 문건에는 ‘전(全)각하(閣下): 난동 시에 군인복무규율에 의거 자위권 발동 강조’라고 명시돼 있다. 당시 상황상 ‘전 각하’는 전두환씨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제5공화국 전(前)사’에 나온 참석자 명단과도 일치한다.

광주, 이제 더 이상 당하지 말자. 아직도 곪아있는 상처에 소금을 뿌린 전두환의 ‘역사에 대한 패악질’을 용서하지 말자. 윤장현 광주시장을 비롯해 의회, 5·18기념재단과 5월단체, 시민사회, 대학교수들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양심도 없는 전두환 일당이 비겁한 언어로 혹세무민하지 못하도록 응징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광주·전남 시·도당도 ‘법치주의와 헌법질서를 유린하는 행위’라며 강력 비판하는 논평을 냈다. 심지어 외국인 셔록도 최근 기자회견을 열고 ‘전두환의 말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한 어불성설이다’고 하지 않는가. 그는 ‘1981년 다시 광주로 돌아와 5·18 때 많은 부상자들을 수술했던 의사를 만났는데, 그 분을 통해 헬기 사격 총상을 입은 부상자들을 치료했다는 증언을 들었다’고 밝히고 있다.

광주시민은 언제까지 ‘광주학살의 수괴’에게 아들·딸·남편·아내를 잃고도 사과는커녕 이런 황당한 궤변을 들어야 하는가. 당시 12·12 군사반란과 5·18 내란 목적 살인 등의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이를 사면해준 결과, 적폐청산이 없었기 때문에 되려 모욕을 당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 아닌가. 지금 감옥에 있어야 할 사람이 세상을 활보하며 해대는 패악질을 보라.

해서 필자는 호남의 선택을 강력히 바라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문재인, 국민의당 대통령 후보 안철수의 분명한 의견을 듣고 싶다. 이미 단순한 정권교체가 아닌 시대교체와 사회 대개혁의 욕구가 촛불민심인데, 케케묵은 적폐의 원뿌리인 전두환의 역사망발 역사왜곡을 어떻게 저지하고 응징할 것인가. 분명한 입장을 광주시민에게 밝혀달라.

역사는 반복된다. 역사를 통해 배우지 못하면 늘 권력자의 범죄는 계속될 수 밖에 없다. 헌법에 의해 가해자라는 판결을 받은 이가 헌법을 부인하며 피해자라 주장하며 국민을 호도하는 ‘전두환 사례’는 죄는 끝까지 물어 청산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해서, 다시 문재인·안철수 후보에게 묻는다. 국정교과서까지 만들어 왜곡된 역사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 밝혀달라.

특히 최근 불거진 5·18 발포 명령을 둘러싼 의혹을 어떻게 재조사하고 규명할 것인지~. 실탄 장전한 총으로 무장한 공수부대를 광주에 보낸 것 자체가 발포명령이자 살인행위 아닌가. 광주는 더 이상 망언과 왜곡, 폄훼에 시달리고 싶지 않다. 양심 없는 뻔뻔함, 천박한 역사인식을 가진 패륜인들에게 휘둘리고 싶지 않다. 다음 정부의 가장 큰 역할은 민주정부를 세우고 각종 적폐를 청산해 민주주의와 민족정기 기틀을 튼튼히 세우는 일이다. 그 첫 번째 실천이 5·18광주민주화운동 바로세우기다. 전두환의 망발은 5·18 진상규명이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광주는 문재인·안철수 후보에게 ‘전두환의 도발을 어떻게 보고 있으며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꼭 듣고 싶다. 현재의 생각을 꼭 밝혀주기 바란다. /ssnam48@kj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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