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정치개혁여수시민운동은 ‘지방선거 전 정당통합문제 및 정치개혁’이라는 주제로 시민토론회를 개최했다. 주제가 신선해서 관심있게 지켜보았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통합이 이슈되고 있는 가운데, 내년 자치단체장·지방의원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을 탈당하여 국민의당으로 옮겨갔던 몇몇 시·도의원들이 다시 민주당으로 복당하려는 움직임을 반영해 선정한 주제 같았다.

이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최현범 전여수시의원은 ‘지방선거 전 정당통합이나 당적 변경은 의사결정권자인 유권자들의 의견을 무시한 정치병폐’라 규정했다. 선거는 후보자 개개인의 역량 뿐 아니라 소속 정당도 유권자들의 중요한 투표 기준인데 당선 후 정치지형 변화와 개인의 정치적 판단에 의해 당적을 옮기는 것은 유권자를 철저히 무시한 것이며 유권자의 선택권을 박탈한 것이란다. 나아가, 정당통합은 정당과 현역의원들에 대한 시민들의 평가와 검증을 막고 치부를 은폐하는 범죄적 수단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위선적이며 정치 퇴행적이라 지적했다.

한 당에 오래 몸담고 그 당에 충성해온 정치인이라면, 위의 지적처럼 시류에 따라 이당 저당 옮겨다니며 이익 챙기는 정치인들이 미울 것이다. 더군다나 정당간 통합이 유권자 투표행위와 정반대 의견을 가지고 일부 정치인 욕심 때문에 이뤄지는 것이라면, 정당성을 확보하기도 어렵다.

현재 다당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정치는 언제든 당대당 통합·합당을 통한 세력 키우기 시도가 이뤄질 수 있다. 그러나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통합논의는 국민의당을 탄생시킨 호남사람들의 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하고 있다. 미리 호남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어본 바 없고, 호남여론이 요구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

잘알다시피 최근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당에 대한 지지율이 5개 정당 가운데 최하위로 나타났다. 게다가 국민의당은 텃밭인 호남에서도 자유한국당 지지율보다 뒤떨어진 것으로 집계돼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총선까지만해도 호남의 맹주로 떠올라 광주·전남에서 1석만 빼고 싹쓸이를 하였다. 호남정치복원, 호남경제차별 해소를 염원하며 호남사람들이 만들어낸 국민의당이 불과 1년여 만에 이렇게 외면을 당하는 이유는 뭔가. 한때 독점정치라는 비판을 받으며 호남사람들에게 회초리를 맞았던 더불어민주당은 광주·전남에 국회의원 단 1명을 갖고 있는데도 왜 이렇게 인기가 회복되었나.

지난 총선에서 호남민심이 국민의당에 몰표를 던져준 것은 더민주당의 오만함에 대한 경고였다. 그러나 더민주당의 총선참패는 결과적으로 약이 됐다. 호남민심을 더욱 자주 다독거리고 낮은 자세로 임해 대선에서는 압도적 지지를 끌어냈다. 더민주당과 국민의당 경쟁체제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불과 일년만에 두 당의 운명은 왜 뒤바뀐 것일까.

필자는 국민의당이 ‘호남정치복원’이라는 호남인의 대의적인 명령을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1년 전 쏟아진 호남정치복원론은 독점정치로 인한 역동성 실종에 대한 비판으로 대두됐다. ‘호남개혁정치 복원’에 대한 지역민의 목마름 때문에 ‘안철수 현상’이 한창일 때 호남이 크게 반응한 것이다. 이런 호남개혁정치복원으로 국민의당을 탄생시켰지만, 현 국민의당 호남의원들은 유권자가 바라는 호남정치개혁 가치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지 못할 뿐 아니라 통일돼 있지도 않고, 세력도 분산돼 있다. 정치 이념이나 지향, 호남정치 복원을 위한 시스템 개편, 경제차별 극복을 위한 적확한 대안 제시도 부족하다. 호남인의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자랑스런 정당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 세월 더불어민주당이 새정치민주연합 시절, 자체적으로 정치적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합리적 인적쇄신시스템을 가동하고 당내 정치적 역동성을 유지하지 못하면서 호남에 몰매를 맞았다면, 국민의당 역시 새정치연합 인적자원을 그대로 투입시켜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들어내지 못한 것, 당을 바꿨지만 새로운 정치를 보여주지 못한 것, 그 결과 호남인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있다.

정당정치는 본디 팀플레이 정치다. 팀플레이가 되지 않는데 어떻게 선거에 이겨 집권할 것이며, 어떻게 정권 지지기반인 당의 지원 아래 국정을 효율적으로 끌고 갈 것인가. 또 어떻게 집권여당을 적절하게 견제할 수 있을 것인가. 시스템이 정착되지 않은 정당, 당무결정에 있어서 민주적 절차를 거치지 않은 정당, 투명하고 공정한 룰이 적용되지 않는 정당은 지역민에게 신뢰를 받기 어렵다.

오래전부터 호남 정치의 당면 과제는 ‘호남 소외와 경제적 낙후를 극복하는 일, 한국사회의 개혁을 선도하는 일’이었다. 호남은 5·16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었다. 그 결과 경제적으로 크게 낙후되었고 호남의 삶은 피폐해져 희망을 잃었다. 빨리 비상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호남의 경제적 낙후는 대물림되는 구조다. 지극히 부당하며 반드시 시정돼야 하는데, 누가 총대를 메느냐, 정치가 앞장서서 그 길을 뚫어야 한다. 그래서 호남은 호남 발전의 비전과 구체적인 정책을 국민의당에 바랬던 것이다.

호남은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나라를 구한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 호남 유권자들은 국민의당이든 민주당이든 호남에 기반한 정치세력에게 호남경제의 정의실현, 새민주주의를 신장시킬 정치개혁을 원하고 있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같은 스타플레이어를 통해, 독재에 항거하면서 민주정치 발전을 도모했던 ‘살아있는 호남정치’를 경험했던 지역 아닌가.

국민의당이 살려면, 바른정당과 통합에만 열을 올릴 것이 아니라 지지기반인 호남에서의 신뢰회복이 먼저다. 호남의 의견을 폭넓게 경청하라. /ssnam48@kj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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