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30(수)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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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전쟁 발발 후 시국에 편승한 국책 이데올로기가 국민의 일상 속에 침투하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1930년 후반 국가총동원법, 종군 작가부대 출병, 국민징용령 공포 등의 정책이 속속 시행됐다.
마쓰다 도키코가 활발히 활동하던 문예지 ‘가가야쿠’ 또한 이러한 시대조류를 반영한 논조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마쓰다는 시국에 영합하거나 병사들의 위문 봉투에 헌납할 목적으로 글을 작성하지는 않았다.
한편, 이 시기 전후 조선에선 이육사가 ‘절정’, 윤동주가 ‘참회록’을 집필한다.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오다.//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볼밖에/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절정’). 조국상실에 대한 애절함의 극치다. 돌파구를 찾으려는 결의도 읽힌다.
제국주의 타파의 열정은 마쓰다에게도 뜨거운 용광로와 같았다. 전쟁이 확대되자 마쓰다도 강렬한 저항의지를 담아 반전시 ‘태양이여’ 등을 발표했다. 조선과 일본의 저항 작가들이 일본 제국의 지배체제에 맞서 대립의 펜대를 세웠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마쓰다는 패전에 이르기까지 7여 년 동안 11권의 단행본을 연거푸 출간했다. 약자 층을 대변한 시점에서 내적충실을 기하는 집필이었다. 여성의 아이덴티티나 노동자·농민의 애환을 주제로 삼아 모든 압제를 물리치면서 한시도 펜을 놓지 않았다. 격렬한 전쟁시대를 치열하게 고투하며 산 작가상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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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다가 조선의 민족교육에도 열정을 보인 것은 평소 재일조선인들과 연대하는 삶을 추구했거니와 일본 내 소외받는 이들의 교육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인이 조선인 교육문제를 염두에나 두었을까?일본 내지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조선에서조차 일본인에게는 조선과 조선인이 논외의 대상이었다. 다음과 같은 지적은 조선인의 위상을 잘 설명해준다.
조선이나 조선인이 일본화되거나 일본인화 돼서 일본인의 흥미를 끌 수 없게 되었을지 모르겠다…. 아니, 그럴 리는 없고 조선 내의 일본인은 조선인과 접촉하지 않았으며 일본인만의 폐쇄적인 일상에 머물렀다. 조선에 사는 것 자체를 본의 아닌 것으로 생각했던 까닭에 조선인에게서 의식적으로 눈을 돌렸다. (다카사키 류지, ‘문학 속의 조선인상’, 세이큐샤, 1962)
조선인을 회피함으로써 일본인의 존재감을 확인하려한 그들의 모순을 지적한 언급이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일본인의 식민지 조선인에 대한 인식은 경계선을 넘어 민중 속을 파고드는 방향으로 월경하지 못했다.
마쓰다보다는 앞 세대이지만 나쓰메 소세키나 다카하마 교시를 비롯한 문인들이 조선의 일상과 조선 민중의 모습을 정치하게 그리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물며 일본인들이 군집을 이루고 사는 일본 내지에서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다행히도 마쓰다의 조선민족 인식은 해방 전이나 후에 상관없이 조선인의 입장과 애로의 이해에 근거한 것이었다. 재일조선인 시점을 수반한 것이기도 했다. 특히 조선학생들의 민족교육에 대한 관심의 척도가 여느 일본인과는 판이하게 달랐기에 눈길을 끈다.
-조선인 학생들의 전통문화 공연 관람-
마쓰다가 조선인 학생들의 무용과 전통춤을 보러 직접 도쿄의 센다가야의 체육관을 방문한 것은 1955년 5월경. 그리고 감상문을 1966년 12월 ‘훌륭한 단결의 힘’이라는 제목으로 진보 일간지에 공개한다.
조선학생들이 무대에서 연출한 장면은 재일조선인의 곡진한 삶을 반영한 것. 마쓰다는 감상문 초입에 일로 조금 늦게 도착해 2막부터 보았는데 특히 5막에 감동했다고 언급한다.
즉 “조선민족이 원래 지니고 있던 전통적인 창조성을 현재 얼마나 혁신적으로 계승하려 하는지”에 대해 목도한 소감을 털어놓는다. 더욱이 ‘농민들의 수확의 기쁨’을 표현한 무대를 거론한 뒤 “재일조선인들이 20년간 지켜왔던 민족교육”에 찬사를 보낸다.
권력과 주류세력이 차별정책으로 일관하며 귀화를 종용하는 일본사회에서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조선민족의 언어와 춤, 전통문화를 고수해온 민족교육을 평가하는 것이다.
마쓰다는 이미 조선인 차별정책을 일본 내에서 독버섯처럼 뿌리를 내린 암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일본 모친대회나 메이데이 행사, 한국전쟁 당시 서명운동을 통해 재일조선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투쟁했으니 익히 알고 있었던 것.
그녀가 조선의 민족교육을 소중히 여긴 점 또한 민족의 고유성을 수호하기 위한 교육이라고 믿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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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의 조선인 학생들을 바라보는 마쓰다의 눈빛은 각별하다. “어린 1학년 학생 한사람에 이르기까지 도약하면서 온몸으로 노래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라고 표현한다. 또한 옆 좌석의 부인이 학생들의 공연을 보고 ‘행복한 모습’이라고 감탄하는 순간을 포착해 “그 부인도 조선인들에게 느낀 부러움을 억누를 수 없었으리라”고 부언한다.
말미에는 “이 음악, 무용, 서사시에 보이는 재일조선인의 단결의 훌륭함, 그 동작에 담긴 조국애”라고 묘사한다. 나아가 “이 무대의 마지막에 일본과 조선 두 나라의 국민 우호의 기쁨이 아름답게 그려져 마음이 온화해졌다”고 고백한다. 한일우호를 염원하는 자신의 심경을 새긴 것이다.
마쓰다 도키코는 재일조선인들이 겪어온 애환을 여느 일본인보다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일찍이 해방 이후 마쓰다 도키코 일행의 활동을 주목하며 특히 재일조선인들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긴 이우봉은 다음과 같이 증언한 바 있다.
일본당국은 마음껏 조선인을 강제 연행해 중노동을 강요하다가 해방을 맞이한 조선인에게 구원의 손길을 펼치기는커녕 역으로 학대와 멸시정책으로 일관했다.
더구나 일본정부는 1947년 5월 2일 공포한 ‘외국인 등록령’을 조선인을 대상으로 일방적으로 적용해 많은 의무를 부과시켰다. 일본의 법률, 규칙 준수를 강요하며 특수한 역사적 배경을 지니는 ‘재일조선인에 유리한 차별대우’ 등은 일절 용인하지 않겠다는 뜻을 명백히 밝힌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외국인 등록법’으로 개칭, 악명 높은 법률이 되어 재일조선인을 규제, 탄압하는 데 맹위를 떨치고 있다. (‘상흔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카도오리워프로실, 1991년)
재일조선인 징용피해를 자신의 일처럼 수용한 작가가 마쓰다다. 해방 전에는 일본 신민임을 강조하다가 해방 후에는 외국인 취급을 하며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일본 권력층의 이중성을 고발한 위의 내용에 공감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을 터….
일본의 작가로서 일본제국의 과거행위에 대해 회개하는 마음이 깊었던 만큼 재일조선인의 처우에 대해 의식하는 모습이 뚜렷했다. 재일조선인을 비롯한 이국노동자의 인권과 주권향상을 위한 활동에 매진한 것은 그와 같은 경위에서였다.
하지만 그런 활동이 기득권세력에 의해 조금도 반영되지 않았다.
지금도 재일조선인 출신에 대한 처우와 지위는 위의 인용문과 같은 모순된 규정에 의해 향상과 해결의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과거사 문제에 있어서도 중국인은 전승 국가의 국민이며 조선인은 일본 신민이었으므로 달리 적용해야 한다는 논리 또한 때때로 등장한다.
일본의 조선학교를 이념적 이데올로기로 판단하기보다는 민족문제의 시점에서 보려는 시선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선학교는 학생들의 국적과 상관없이 입학을 수용하고 있으며 조선의 민족교육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학교이기 때문이다.(‘조선학교 이야기’·도서출판 선인, 1914년)
외국인 학생도 있거니와 조선학교에 관심 있는 일본인 학생도 수학이 가능하다. 교원 중에는 일본인도 있다. 재일 조선학교의 학생들 상당수의 국적은 한국이다.(같은 책) 이러한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오로지 이념적 잣대로 재단하는 관점에 현실적 괴리가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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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다 도키코는 1966년 5월에 발표한 ‘민족교육을 수호하자’라는 르포에 ‘재일조선인 인권을 수호하는 회’의 멤버들과 함께 펼친 연대운동을 소개한 바 있다. 거기에서 마쓰다는 ‘재일조선인의 민족교육이 얼마나 정당한지, 왜 우리 일본국민은 이를 탄압하려는 정부에 항의, 요청해야 하는지’를 호소한다.
일본사회의 편견에 일찍이도 예각적 자세를 견지한 마쓰다 도키코.
그녀의 자세는 조선의 전통과 문화를 수호하기 위해 민족교육의 꽃을 피우던 바로 그 현장을 찾은 실천 행동과 무관하지 않다.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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