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02(토)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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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울보다. 기쁠 때보다도 누군가 아파할 때, 슬퍼할 때, 고통스러워할 때 곧잘 운다. 심지어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도 울곤 한다. 그래서 민망할 때가 많다. 스스로 바보 같다. 남들도 바보 같다고 할 것 같다. 그래도 난 어쩔 수가 없다. 그냥 눈물이 나니까.
눈물을 말하려니 일본 전국시대 도꾸가와 이에야스의 어머니가 생각난다. 오다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의 어머니는 미인이고 성품도 좋았다. 그런데 전국 시절이라 시류에 따라 여러 성주들에게 운명을 맡겨야 하는 처지가 된다. 어느 날 아들 도꾸가와 이에야스가 오다 노부나가에게 인질로 잡혀 죽게 됐다. 그때 오다이는 오다 노부나가를 찾아가 “내 아들을 살려 달라”고 사정했다. 노부나가는 “내가 당신의 아들을 살려 준다면 그 대가로 나에게 무엇을 바치겠느냐”고 했다. 오다이는 “가장 값진 것을 드리겠다”며 “내가 바칠 것은 이것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당신도 어머니가 있습니다. 제 아들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과 어머니의 눈물을 바칩니다”고 했다. 인질로 잡혀 죽음 앞에 선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어머니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결국 노부나가는 도꾸가와 이에야스를 살려주었다. 눈물이 오다 노부나가를 감동, 회심하게 한 것이다. 죽임에서 살림을 이룬 것이다. 어머니의 값진 것은 황금도 예쁜 여인의 몸도 아닌 눈물이었다. 어머니의 가장 값지고 아름답고 영원히 순수한 것, 더럽혀지지 않는 눈물이 아들을 살린 것이다. 김현승 시인도 <눈물>이라는 시에서 “흠도 티도/금 가지 않은/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더욱 값진 것으로/드리라 하올 제/나의 가장 나아중 지니인 것도 오직 이것뿐//”이라며 나의 전체요 마지막 가진 것을 ‘눈물’이라고 한 바 있다. 넉넉하게 공감이 된다.
이렇듯 어머니의 거룩한 눈물 뿐만 아니라, 아들의 손수건에 적신 눈물도 있다. ‘울컥 치민 울음이 뜨거워 어깨가 흔들린다./내 아들이 안경을 벗고 눈물을 닦는다./아들아!/어느새 어미 아픔을 제 눈물로 씻어낼 줄 아는/나이가 되었구나./문득 흔들리던 어깨가 멎는다.’(홍회정 <아들의 손수건>(전문))
그런데 요즘 세상엔 눈물이 없다. 기후 위기로 눈물샘이 말랐을까. 눈물보에 가뭄이 들었을까. 이태백(이십 대 태반이 백수)은 더 이상 울지 않는다. 아니 눈물을 흘릴 겨를이 없다. 사회의 구조적 모순 앞에서 발버둥하며 N포(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으려면 그냥 현실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도록 강제하고 있다. 생존을 위협하는 절박한 경제구조와 불확실한 미래는 눈물을 허락하지 않는다. 오로지 생존 앞에서 갈팡질팡, 허둥지둥, 허겁지겁, 동분서주할 뿐이다.
한편 ‘악어의 눈물’이라는 가짜 눈물도 있다. 악어가 먹이를 잡아먹을 때 먹잇감을 안쓰러워하여 눈물을 흘린다고 해서 붙은 말이다. 정치인들의 눈물이 대표적이다. 대통령이 사회적 참사를 두고 국민들 앞에서, 대선 후보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며 또 소위 이름있는 지도자들이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기자회견 등을 하면서 흘렸던 눈물들이 그것이다. 위선의 눈물이다.
이처럼 눈물은 아름답고 거룩한 것이기도 하고, 위선이기도 하다. 그것이 어느 쪽이든 분명한 것은 눈물이 사람의 관계 즉 공동체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공동체원으로서 사랑과 연민, 연대에 기초한 눈물이야말로 너나없이 흘려야 할 인정머리이다. 눈물이 사라진 시대에 느끼는 각박함, 삭막함, 메마름, 인정머리 없음은 구차하고 척박하여 견디기 어렵다.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정호승 시인의 고백에 ‘나도 그렇다’이다.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보다 울 줄 아는 사람과 같이 살고 싶다. 적어도 공동체원으로 같이 살려면 같이 울 수 있어야 한다. 눈물 없는 사람,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어찌 같이 살며 공동체를 이룰 수 있겠는가.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울보로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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