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 치유예술가

‘도자기상점에 들어간 코끼리’라는 말이 있다. 1958년 독일 코미디 영화의 제목이다. 덩치 큰 야생코끼리가 귀한 보물들이 가득 진열된 도자기상점에 들어가 돌아다닌다. 코끼리가 움직일 때마다 부딪혀 귀한 도자기들이 박살 난다. 유시민 작가는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도자기 박물관의 코끼리로 비유하며 말했다. 대한민국은 보물이 전시된 도자기 박물관이요, 대통령은 야생코끼리라, 뭔가 움직이며 열심히 하면 할수록, 나라의 근간이 무너지는 꼴을 보고 하는 말이다. 동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으니, 이를 어찌할까?


인생은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경제 학자들의 통계를 살펴보면 ‘운팔기이’라고 한다. ‘어떤 나라에 태어났는가?’가 50%, ‘어떤 부모의 자녀로 태어났는가?’가 30%,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배경이 인생의 80%의 영향력을 지니고 나머지 20%의 노력과 의지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과 기질 등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어쩌면 운이 더 큰 작용을 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어느 나라 국민으로 태어났는가?’는 인생의 50%를 차지할 만큼 중요하다. 즉, 나라가 인생의 행복과 성공에 미치는 영향력이 가장 크다는 것이다.


분단국이지만 우리 세대는 대한민국이라는 독립된 나라에 태어나서 이 정도 자유와 풍요를 누리고 있다. 운이 좋은 편이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 세대만 봐도 지독하게 운이 없었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나는 태어나보니 일제강점기더라. 학교에서는 우리말을 가르치지 않았고, 이름도 강제로 일본 이름으로 개명해야만 했다.” 나라 잃은 서러움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일제는 한국 청년들을 죄수들이 일하는 사도 광산을 비롯한 여러 오지의 탄광에서 노역을 시켰고, 소녀들은 취직시켜 준다고 속여서 전쟁터의 종군 위안부로 삼았다.


몇 년 전, 목포 고하도에 있는 근대 유적지 답사를 갔다. 태평양전쟁 말기, 일제가 연합군과 싸우기 위해 우리 소년들을 자살폭탄으로 삼아 배에 묶어 미군의 배에 부딪혀 침몰하게 하려고 했던, 가미카제 흔적이 있는 동굴들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16여 개의 동굴을 돌아보며 그 참혹했던 상황이 그려졌다.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와 답사에 동행한 시민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며 묵념했다. 그리고 잊지 말자고 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일본의 노예처럼 살다가 1945년 8월15일 해방되자, 곧 1950년 3년간의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으로 분단돼,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살아야 했던 우리 부모님들. 그들은 가난하고 비참한 나라의 운을 후세에 물려주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며 일했다. 그래서 자식을 가르치는 것이 삶의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우리는 풍요로운 대한민국(귀한 도자기로 가득 전시된 박물관)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기억해야 할 아픈 역사가 있다.

‘일제의 식민지배가 정당한 것이었다’라고 주장하는 뉴라이트 학자들을 우리 세금으로 일하는 정부기관의 수장으로 앉히는 인사를 자행하는 대통령이라니! 도자기 박물관 안에서 야생코끼리의 난동이 아니고 무엇인가!

목숨을 바쳐 독립운동을 하며 저항했던 선열들의 피눈물을 기억해야 한다. 그 독립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독립기념관이 있다. 독립군을 대표하는 김구 선생의 손자도 있는데, 일본 극우 성향의 인사를 독립기념관장으로 임명한 것은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다.

사람은 이야기로 존재한다. 나라는 역사로 정체성이 결정되며 민족공동체가 작동하고 존재하는 것이다. 밀정들에게 권력과 완장을 채워주었으니 광복절에 어찌 선열들을 볼 수 있을까? 독립선열들이여, 이 난동을 멈추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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