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호연

출근길 폐지 할배 리어카 밀어주고
건널목 불편한 몸 손잡느라 또 늦겠지
그래도 매일 아침은 힘차게 걸었겠지

신기해 한결같이 네 안은 선배 같고
당당하면 겸손하고 싸늘하면 따뜻했다는
십 년을 미리 본 빛이 되려 십 년 선물했다

비 오면 더 설레서 함께 걷던 테마임도
계절없이 반겼으니 지금도 반겨주겠지
보리수 열매 익으면 다시 웃는 너 보겠지
(시집 ‘비를 안아주었다’, 고요아침, 2024)

[시의 눈]

일찍 온다던 그이가 세 시간이나 늦는군요. 아마 한 할배가 폐지를 싣고 끄는 리어카를 밀어주고 있겠지요. 아니면, 다리 불편한 재혁이의 손을 잡고 오느라 퇴근길을 또 지체하나 봅니다. 이처럼 당신을 지켜보며 문득 내 안으로 차오르는 힘을 얻기도 한답니다. 내 오랜 짝인 당신은 선배와도 같았습니다. 십 년을 당신이 더 살았지만 되려 당신은 내게 그 십 년을 선물한 듯합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함께한 길이었군요. ‘여보 나왔어!’ 오늘 당신은 땀 냄새 풍기며 대문께의 나를 반깁니다. 하지만 그게 한낱 그림자라니요! 보리수 열매 익을 때 함께 따 먹자던 나무 아래, 그만 들어가자 해도 당신은 그림자로 덩실 웃고만 있습니다. 뚝 눈물이 떨구어집니다. 당신은 아직 그 자리에 있지요? 당신 누운 보리수 아래 이 눈은 눈물 되어 녹을까, 난 뺨을 찬바람에 내어놓습니다. 곽호연 시인은 2017년 ‘시조시학’ 신인상, 2021년 ‘좋은시조’ 동시조로 등단했고 이동주문학상 작품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는 화자의 목소리를 시에 옮길 때 독자에게 숨기는 방식으로 쓰되, 그 사물과 풍경 뒤 자신의 활자체를 돋을새김해 보여주는 시인입니다. <노창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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