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혜원作 ‘바리케이드에서 만나요’

임용현作 ‘발화의 등대’

신도원作 ‘너-기억의 투영’

입구에 들어선 순간 노랫소리가 흘러나온다. 익숙한 듯 낯선 민중가요의 음성이 전시장을 가득 채운다. 스피커마다 다양한 선율이 흐르고, 관객은 그 사이를 걷는다.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오는 8월17일까지 열리는 2025 민주인권평화전 ‘공명-기억과 연결된 현재’는 말 그대로 ‘기억’과 ‘현재’가 서로를 울리며 반응하는 공간이다.

이번 전시는 단순한 과거 회고에 머무르지 않는다. 1980년, 2024년의 계엄이라는 두 시점을 나란히 배치해 모순과 희망이 동시에 존재하는 오늘의 현실을 예술로 들여다본다.

전시 제목은 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수상 소감에서 비롯됐다.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인가, 동시에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전시 전반을 관통한다. 이 질문은 다양한 작업과 아카이브의 층위를 따라 확산된다.

전시 초입에 자리한 아카이브 섹션은 이번 전시의 중심 축이 되는 공간이다. 1980년대와 2024년 시위 현장을 중심으로, 시대를 투영한 ‘노래’의 기억을 수집·분석하고 재배치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 ‘오월의 노래’, ‘광주출전가’ 등 80년대를 대표하는 민중가요는 물론 대중가요 기반의 개사곡들이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각기 다른 스피커에서 울려 퍼진다.

쉽게 접할 수 없는 희귀 자료도 만나볼 수 있다. 새벽 창작집단의 미발표 노래극을 비롯해 1984년 발매 직후 수거돼 시중에 퍼지지 못했던 ‘노래를 찾는 사람들’ 초판 테이프가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공개된다.

참여형 미디어 설치작품도 눈길을 끈다. 관객의 목소리를 감지해 빛으로 확산시키는 임용현의 ‘발화의 등대’, 관객 움직임에 따라 영상과 음향이 변화하는 신도원의 ‘너-기억의 투영’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들이다. 성기완의 ‘HLKG518 여기는 라디오 광주’는 1980년과 2024년의 시공간을 연결하는 가상의 라디오 방송을 통해 역사와 현재의 간극을 사운드로 채운다.

전 세계 저항 현장에서 불린 노래들과 바리케이드 설치 퍼포먼스를 연결시킨 권혜원의 ‘바리케이드에서 만나요’, AI가 학습한 1980년과 2024년 뉴스 텍스트·이미지를 재조합한 양민하의 ‘그대와 그대의 대화’ 등도 있다.

이번 전시는 기억의 보존 장소에서 더 나아가 참여와 공감의 플랫폼으로 전시장을 전환시킨다. 관객은 더 이상 과거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위치에 머물지 않는다. 음악과 미술, 인터렉션의 매개를 통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기억에 응답하게 된다.

정희석 학예연구사는 “폭력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세계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예술을 통해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며 “기억은 단절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공명’이라는 개념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고 밝혔다.

/최명진 기자

▶ 디지털 뉴스 콘텐츠 이용규칙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