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19(일)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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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의 한가위 보름달 같은 자식 돌봄으로 여기까지 살아온 여러 자식들의 그믐달 같은 부모 돌봄은 장모님 한 분의 의식주 생활을 원활하게 하는데 턱없이 빈약하기만 하다. 여러 자식들이 타향에 살고 있어 그런지 몸으로 타인이 된 듯하다. 각자의 생활과 사정을 고려하면 다 이해가 된다. 그러나 당장 돌봄을 기다리는 장모님 앞에 서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나 다름없다. 과연 돌봄은 누가 어떻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여야 하는가.
성장과 효율을 앞세우는 신자유주의 질서가 사람들의 정신과 육체를 사로잡고 있는 이 시대는 소외와 배제, 기아와 전쟁, 분쟁과 소요로 만신창이가 되어 가고 있다. 가정이라는 단위에서부터 타인이 돼 사회나 국가 단위로 나아가면 온 세상은 만인과 투쟁하는 곳으로 확장된다. 급기야 개인과 사회는 정체성의 위기를 맞게 되고 공동체는 위기를 넘어 붕괴에 직면하게 된다.
장인 돌아가신 후 지난 17년 동안 장모님은 늘상 “나는 혼자서도 잘살고 있다. 걱정하지 말라”고 하며 돌봄을 스스로 짐 지며 자식들을 타인으로 살도록 했다. 장모님은 자신의 세계 인식의 한계로 혼자 잘 사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새삼 ‘누군들 혼자 잘 살 수 있는가?’ 하는 질문 앞에 서게 된다. 밥 한 톨, 물 한 그릇, 반찬 한 가지, 부엌살림, 집, 침대, 이불, 옷, 세탁기, 진료, 주사, 약, 보험, 전기, 쓰레기, 가로등 등등 도처에 혼자일 수 없는 것들로 빼곡하다. 아니 전부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나’들은 입으로는 ‘사회적 존재’임을 말하면서도 생활 속에서는 각자도생을 위해 무한경쟁을 하는 ‘이기적, 개인적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각자 ‘너’, ‘그’가 돼 공동체로부터 유리, 분리되고 있다.
병원 진료와 회복을 위해 도시에 사는 사위(필자) 집에 얼마간 머무르다가 장모님이 원하던 시골집에 모셔다드렸다. 그리고 더 자주 장모님을 찾아뵈면서 당신 입으로 ‘혼자서도 잘살고 있다’는 말씀은 믿는 구석이 있어서였던 것을 알게 됐다. 자식들의 그믐달 같은 돌봄도 있지만 요양보호사의 방문 요양이, 마을 지인들의 과일, 반찬, 음료 등의 문병이, 친불친 이웃들의 안부와 위로 전화가 보름달처럼 밝게 비추며 잇따르고 있었다. 장모님은 아름다운 타인들의 돌봄이 있는 곳에서 아름다운 타인으로 ‘혼자’ 잘 살 수 있다는 자신에 찬 말씀이었다는 걸 깨닫게 됐다. 이기적 타인들 중 한 명인 필자로서는 ‘아름다운 타인’들끼리 ‘혼자’ 사는 연대가 돌봄의 공동체가 되는 셈속을 몰랐던 것이 부끄럽다. 나아가 노쇠해진 장모님을 통해 돌봄에 대한 대책을 생각해 볼 기회를 갖게 됐다.
타자화된 타인인 자녀들의 부모 돌봄으로 가족공동체가 균열된 모습을 보여주는 이때에 부모 아닌 이들의 돌봄은 어떠할지? 상상하기조차 싫다. 장모님이 요양원에 입소하는 것을 그토록 꺼리는 중요한 단서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보름달같이 아름다운 타인들이 돌보는 요양원들도 많으련만 주위의 노인네들이 한사코 요양원 입소를 경계하는 것을 종종 보았다.
그런데 장모님 고향마을 지인들의 과일, 반찬, 음료 방문과 안부와 위로 문병 전화가 보름달처럼 밝게 이심전심 위안, 음악, 시가 돼 장모님을 구원하고 있었다. 구원이 마을 안에 있었다. 마을에 있는 타인들의 소박한 아름다움이 돌봄공동체로 승화해 새로운 가치와 세상을 만들고 있어 희망을 걸게 된다.
프랑스 실존주의자 장 폴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다’고 했다. 그렇다. 현대사회는 지옥을 향해 치닫는 설국열차다. ‘너 죽고 나 살자’는 각축장에선 타인이 지옥이다. 그런데 그 타인들이 각자 스스로 할 수 있는 돌봄의 방법으로 장모님을 구원하고 있다.
폴란드 시인 아담 자가예프스키는 ‘타인들에게만 구원이 있다’고 말한다.
‘타인의 아름다움에서만/ 위안이 있다, 타인의/ 음악에서만, 타인의 시에서만/ 타인들에게만 구원이 있다/ 고독이 아편처럼 달콤하다 해도/ 타인들은 지옥이 아니다/ 꿈으로 깨끗이 씻긴 아침/ 그들의 이마를 바라보면/ 나는 왜 어떤 단어를 쓸지 고민하는 것일까/ 너라고 할지, 그라고 할지/ 모든 그는 어떤 너의 배신자일 뿐인데, 그러나 그 대신/ 서늘한 대화가 충실히 기다리고 있는 건/ 타인의 시에서 뿐이다.’(시집 <타인만이 우리를 구원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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