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숙 이웃사랑노인복지센터 시설장

‘가족휴가제’라는 말은 상당히 오래전부터 회자되던 용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우선 홍보가 미흡한 탓도 있지만, 각 기관에서도 제도의 취지는 좋다고 생각하나 막상 활용하는데 상당한 제약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고 득실도 전혀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 정확한 답을 도출하지 못했다.

그러나 통합재가 시범사업Ⅱ에서 단기보호서비스를 시행한 바 조건이 갖춰진 기관에서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치매가 심한 수급자를 둔 가정은 가족이 한시도 보살핌을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에 족쇄처럼 부담이 되기도 한다. 그로 인해 보호자는 점점 지쳐가고 더 나아가 가족 간 화합을 깨는 트리거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부담에서 벗어 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통합재가 시범사업Ⅱ’는 가뭄에 단비와도 같은 제도이다.

통합재가 시범사업Ⅱ 시행을 통해 보호자에게 휴식을 제공함으로써 보호자와 수급자의 만족도가 향상됐으나, 정착되려는 시점에서 시범사업Ⅱ가 마무리됐다.

그러나 통합재가를 시행하던 기관이 별도의 절차를 거쳐 ‘단기보호시범사업’ 신규 참여기관으로 선정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후 가족휴가제가 수급자 및 보호자를 만족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얻게 된 우리 기관에서는 적극적인 홍보와 보호자의 요구에 따라 성실히 시범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이에 좋은 사례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타 기관에서 서비스를 받고 계신 정 모 어르신의 보호자가 상담 신청을 했다. 어머니는 2등급 와상수급자이고 휠체어로 이동하며 스스로 식사가 가능하다. 다만 초기 치매 상태로 기저귀를 사용한다. 보호자는 타 지역에 거주하나 어머니의 보호를 위해 어머니집에 동거하며 보살피고 있다. 때문에 2년 동안 여행 한번 못가고 휴식다운 휴식을 못해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였다. ‘힐링’이 절실한 상황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이 보호자는 단기보호(또는 가족휴가제)가 가능하면 일주일간 휴식 겸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고 했다. 6월 초 여행 날짜가 잡혔고 와상상태의 수급자에게 장기요양 가족휴가제의 단기보호가 시작됐다. 처음에는 수급자가 환경도, 요양보호사도 낯설어 매우 긴장하고 정서적으로도 다소 불안정해 보였다. 성격이 온순하고 말이 없었으나 얼굴은 편치 않게 느껴졌다. 가족에 대한 불신을 토로하기도 했고 심적 불안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조금씩 익숙해지는 듯 얼굴에 불안이 가시며 평온한 모습을 보였다. 가끔 말을 걸면 긍정적으로 반응했고 긴장된 모습은 눈에 띄게 줄어드는 등 안정돼갔다. 3일째부터 흥미 유도를 위해 외부강사가 진행하는 노인 체육 프로그램을 휠체어에 탄 채 참관하게 했다. 물론 프로그램 강사께 “오늘은 특별한 참관자가 있으니 흥겹고 재미있게 해 달라”고 미리 부탁을 해놨다. 정 모 어르신은 처음에는 얼떨떨해했으나 매우 흥미롭게 받아들이며 손동작을 따라하기도 했다. 다음 날도 비슷하게 프로그램에 참여토록 했다. 이번에는 직접 참가할 수 있도록 휠체어에 보조 책상을 마련해 드렸는데, 이내 다른 수급자들과도 어울리기 시작했다.

일주일이 지났고 보호자와 마무리 상담을 하던 중 수급자께 일주일 동안 불편했던 점이나 섭섭한 점이 없었는지 여쭸다. 평소 말씀도 없으시고 몸도 불편하신 어르신의 입에서 “날마다 주간보호에 오고 싶다”는 뜻밖의 얘기가 나왔다. 보호자는 일주일 만에 너무 달라진 수급자를 보고 놀라고 또 놀라워했다. 현재까지 신체적, 정신적 만족도를 유지하면서 평온한 모습으로 주간보호에 잘 적응하는 어르신을 보면 마치 흙 속에서 진주를 얻은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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