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순복 품자주자시민들 대표회장 / 조선대 법학과 명예교수

“사람이 희망이다. 교육이 희망이다. 지역이 희망이다.“ 부산 분권혁신운동본부 상임대표이셨던 황한식 교수님의 추도식에서 부인이신 김수자 교육자치 대표가 남편의 삶을 돌아보면서 하신 말이다. 올해 10월. 광주에서 영호남 자치·분권·균형발전 전략 워크숍을 작년 부산에 이어 두 번째로 개최했다. 교수님은 암 수술 이후 항암 치료로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행사에 참여하시겠다고 통보했다. 일주일 후 다시 연락이 왔다. 참석하기 위해 걷기 연습과 운동을 시도해보았지만 역시 힘드셨던지 못 오신다고. ‘지역의 힘, 주민의 힘, 연대의 힘’을 강조하며 부탁 말씀을 하셨다. 가슴이 뭉클했다. 40여 년 동안 자치 분권개혁 운동에 쏟은 그분의 정성과 열정을 알기에 더욱 그랬다. 부울경과 광주전남이 연대를 심화해서 우리나라의 자치분권 개혁을 앞당겨야 한다고 하셨다. 추도사를 하던 부산대 총장은 故 황한식 교수님을 가리켜 자치분권운동에 ‘미친’ 사람이다고 표현했다. 그만큼 자치분권개혁 시민운동에 헌신 몰입하셨다는 말이다. 마지막 병상에 계시면서도 부산분권혁신본부 임원분들에게 미래 운동 방향에 대해서 당부하셨다고 한다. 3년 전 광주의 품질자치주민자치시민들(약칭 품자주자시민들)과 부산 분권혁신운동본부 간에 MOU를 체결했다. 교수님의 분권 특강을 처음 들었을 때 놀란 점이 있다. 강의의 시작과 마지막 부분에 시를 낭송했다. 그 분은 크리스챤 아케데미에서 농촌사회 간사활동을 하면서 농민과 지식인의 만남을 통해 농민운동 노동운동을 하다 투옥됐다. 이른바 크리스챤 아카데미 사건이다. 유신정권에 의한 민주세력 탄압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그만큼 치열한 사회운동가였음에도, 시를 읽고 좋아하는 낭만파였다. 작년에 부산분권혁신본부 몇분이서 광주를 방문했는데, 수도권일극집중체제의 문제를 부산과 광주의 시민들이 노래 가사로 만들어 품바타령처럼 전국 순회공연을 제안하기도 했다. 일제와 해방이후 시대별로 특징을 요약하면서 대표적인 대중가요 한 곡씩 함께 열창했던 시간들이 생각난다.

문재인 정부 시절 대한민국은 자치분권국가를 지향한다고 해 분권 개헌을 시도했으나 좌절됐다. 연방제에 가까운 분권을 한다고 했지만 이뤄지지 못했다. 수도권 일극 집중체제와 중앙집중적인 행정 시스템으로는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강화하겠는데 한계가 있다. 역대 정부마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지역발전위원회, 지방시대위원회 등 명칭을 달리해 자치분권 지역균형 발전 정책을 줄기차게 주장해 왔지만, 실제는 진도를 많이 나가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치분권 운동을 해왔던 어느 분은 이제 지쳤다고 고백했다. 5·16 군사 쿠데타 이후 휴면 상태에 들어갔던 지방자치가 부활된 지도 이미 30년이 경과했지만, 지방자치가 가야 할 길은 멀기만 하다. 고유 사무에 비해 국가위임 사무의 비중은 여전히 훨씬 높고,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에 있어서도 지방세는 3할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2할 자치라고 하지 않은가? 지방자치 부활 30년이 지났음에도 지방의 재정자립도는 약화되고 있다. 주민자치위원회가 주민자치회로 전환된 지도 10여 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시범 사업 중에 있다. 읍면동 지역 주민들의 유일한 법적 자치기구인 주민자치회는 그 법적 근거를 아직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주민자치회와 마을 공동체의 통합적 발전은 아직 멀었다. 이전 윤석열 정부에서는 주민자치회가 오히려 후퇴됐고, 주민자치 박람회도 폐지되지 않았던가?

“지방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고 국무총리도 최근 말했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우리나라가 인구감소와 지방소멸 위기 속에서, 국토의 어디에서 살든지 삶의 질에 있어서 큰 차이가 없도록 하는 정책목표를 지향해야 한다. 지방의 의사와 무관하게 국가발전계획이 결정되는 중앙집권적 의사결정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 자치분권개혁은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다. 지방의 힘, 시민의 힘, 지역연대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 주민이 먼저 자치의 주체세력으로 서고, 주민주체세력들간의 네트워크화가 이뤄져야 한다. 영호남이 연대해야 한다. 진주성에 가면 ‘무진주 무호남’ 진주가 없으면 호남이 없다고 비석에 적혀 있다. 화순 출신 최경회 장군은 임진왜란 의병 출병시 왜 경상도까지 가야 하냐는 부하의 푸념에 “호남도 우리 땅이요, 경상도도 우리 땅이다”고 했다. 독재정권에 의해 왜곡된 지역감정에 끌려다닐 수는 없다. 나라를 살리는 데 어찌 영호남이 따로 있을 수 있는가? 자치분권과 균형발전 운동에 헌신하셨던 故 황한식이 당부했던 지역연대의 힘을 다시 생각해 본다. 그 분이 그립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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