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29(일) 12:56
|
내가 될 수 있었다. 내가 아니었을 뿐이다. 비좁은 공간에서 숨이 턱턱 막히는 과밀 환경을 왜 통제하지 못했을까. ‘만일을 대비해’ 최소한의 안전대책도 없었다. 명백히 인재다. 그런데 어찌 책임지는 이 하나 나서지 않는다. 살아남은 시민들은 자책하는데 권력자들은 외면하고 있다.
특별수사가 시작됐으나 이번에도 실무자를 중심으로 ‘희생양’을 찾는 듯 하다. ‘꼬리 자르기’라며 일선 경찰과 소방관들은 반발한다. 거짓에 거짓으로 정말 ‘몸통’은 자리 보전하고 이대로 넘어가겠다면 비뚤어진 심보다. 부끄러운 줄 모르고 남탓만 하는 것이요, 적반하장이다. 지금 국민들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헌법 제10조). 국가의 존재 이유를 의심하게 만들고, 국민의 목숨을 등한시한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재난에 너무 무력하다. 안전 시스템의 붕괴다. 158명, 살릴 수 있었다. 그런데도 한 마디 사과조차 그리 어려울까. 국무총리와 행정안전부 장관, 서울시장, 용산구청장의 말과 행동은 너무 엉뚱했다. ‘할 수 있는 건 다했다’는 태도다. 대통령은 “죄송한 마음”이라며 뒤늦게 고개를 숙였지만 불충분했다. 사생결단 대결 정치도 지탄받아 마땅하다. 제 몫을 다하지 못하는 국회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공감하는 노력부터 기울여야 할 게다.
완전하기보단 진실한 지도자를 국민들은 원한다. 소중한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 헌법과 법률로 부여된 직무다. 공직의 의무와 책임이다. 그 누구라도 엄히 물어야 한다. 시민들이 거리에서 촛불을 들고 중고생들은 시국선언을 하고 있다. 광주시민사회단체는 “진정한 애도는 책임자들이 책임을 지고 처벌받을 사람들이 처벌받은 다음에 시작할 수 있다”고 촉구했다.
이태원 참사가 ‘제2의 세월호’가 아니면 무엇인가. 2014년 4월16일 제주도로 수학여행 날 오전. 전남 진도군 해상에서 세월호가 가라앉았다. 선내에서는 ‘제자리서 기다리라’는 안내 방송만 있었다. 그렇게 아이들은 못다 핀 꽃이 됐다. 2022년 10월29일 핼러윈 데이를 앞둔 주말 저녁. ‘숨을 쉴 수 없다’. ‘압사당하기 직전’이라는 112 신고가 잇따랐어도 ‘알았다’는 대답 뿐이었다.
입에 담기 힘들고 아프지만 애써 소환하는 것은 기억하기 위해서다. ‘애들 밥 한 끼는 먹여야지’. 무릎 꿇고 제사상을 차린 상인의 뒷모습에서 함께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잊어선 안 된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절대로 잊지 말자. 기억하겠습니다.
생때같은 젊은이들을 어처구니 없게 보냈다. 무고한 죽음에 대한 애도, 끝나지 않았다. 유가족들은 “정부의 모습은 제대로 볼 수 없고, 의지할 곳이 없으며 방치당하고 있다”면서 소통의 부재에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정확한 진상 규명과 응당 책임에 따른 처벌을 최우선해 요구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보면 윤석열 정부에 10명 중 6명 이상은 부정 평가를 내렸다. 무슨 일이든 적절한 때가 있는 법이다. 타이밍을 뺏겨서, 골든타임을 놓쳐 문제다. ‘일 못하는 정부’, ‘준비 안 된 대통령’이라는 꼬리표는 떼야 하지 않을까. 출범 6개월이다. 불과 반 년만에 인기가 급락했다.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최대 위기다. 전면 쇄신이 돌파구일 수 있다. 남은 4년 6개월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숙고해 보길 바란다.
눈만 감아도 영상에 본 장면이 떠오릅니다. 소셜미디어(SNS)에서 과거보다 더 빠르게 비극의 현장이 전파되고 있다. 온라인을 통해 쉼 없이 소비되는 또래의 참상을 목격한 20대에겐 공포감이 더하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불안감과 우울감, 상실감, 죄책감, 메스꺼움, 심장박동 증가, 수면장애…. 생존자나 유가족, 사회 구성원은 감당못할 반응을 경험한다.
전문가는 기억을 소화하는 4-6주 동안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진행되는 걸 막는다고 한다. 이후에도 이상 증상이 반복되면 반드시 상담과 치료가 필요하다. 5·18단체는 “피해자들은 트라우마를 온전히 치유하지 못하고 술과 약에 의지해 사회적으로 고립됐다”며 “개인의 삶과 공동체가 파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국가의 지원을 강조했다.
보름여 흘렀다. 힘에 부쳐도 조금씩 일상을 찾아가려 애쓰는 즈음이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은 이제 없어야 한다. 다시는 청춘들의 명복을 빌지 말았으면….
▶ 디지털 뉴스 콘텐츠 이용규칙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