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면 천변을 따라 펼쳐진 하얀 솜꽃의 향연. 곡성군 겸면에 자리한 대규모 목화밭 풍경, 여름 뜨거운 태양아래 꽃을 피워내고 어느 가을이 오면 앙상히 말라가는 온 몸으로 남은 생을 다 바치는 순결한 투혼의 꽃 목화가 하얀 솜꽃을 터트리며 아름답게 펼쳐져있다.

…꽃잎 떨군 자리에

아프게 익어 다시 피는

목화는

한 생애 두 번 꽃이 핀다네

봄날 피는 꽃만이 꽃이랴

눈부신 꽃만이 꽃이랴….

-박노해, ‘목화는 두 번 꽃이 핀다’ 중



작은 정성에 감동하는 경우가 있다. 거창하게 계획하고 준비해서 떠난 여행길이 아니라 그냥 길을 가는 도중 눈에 띄는 안내판을 따라 무심코 들렀다가 예기치 않은 풍광이나 장면을 마주하곤 흐뭇한 미소를 지을 때도 많다. 어찌 보면 하찮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나름대로 의미를 간직한 그 작은 대상에게서 받는 감동의 울림은 더욱 크다. 황홀하기까지 하다.

오늘 찾아가는 여정이 딱 그렇다.

이제는 일부러 만들어 놓은 식물원이나 시배지에나 가야 볼 수 있는 목화꽃에 푹 빠질 수 있는 곳이다. 10대는 물론이고 20-30대에게는 감흥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궁핍한 시절을 견뎌내고 이제 인생의 의미를 어느 정도 음미하게 된 50대 이상의 장년들은 하얀 솜을 뭉실뭉실 품고 있는 목화가 눈앞에 등장하는 순간 눈물이 핑 돌게 된다. 누구에게나 애잔한 추억이 서려 있기 때문이다.

그 목화꽃을 맘껏 눈에 담을 수 있는 곳, 곡성 겸면의 목화공원이 오늘의 목적지다.

깨끗한 냇가 옆에 자리잡은 목화밭은 넓다. 목화공원에 다섯마지기(1000여 평)정도 목화가 심어져 있다. 공원 밖 9만여 평의 논에도 목화가 하얀 솜털을 해바라기 하고 있다. 줄잡아 1만여 평의 목화가 재배되고 있다. 주변에는 토속 농작물이 자라고 있다. 조롱박과 수세미가 주렁주렁 걸린 조롱박터널도 볼만하다. 원두막도 정겹다.

징검다리와 나무다리는 천변을 가로질러 놓여 있다. 냇가에는 송사리와 다슬기도 많다. 아이들은 이것들을 찾아보는 재미로 시간가는 줄 모른다.

이 곳을 목화밭으로 가꾼 지가 10년이 넘었다.

이 곳의 면장이 우리 주변에서 거의 자취를 감춘 목화를 되살려 시골마을로 탐방객들을 유혹해 보겠다며 천변에 목화를 심었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알음알음으로 목화밭을 찾기 시작했다. 그의 노력으로 지금의 목화공원이 탄생했다.

우리 곁에서 목화가 사라져 간 게 1970년대 후반쯤이다. 옷과 이불 등 필수품의 원료였던 면이 화학섬유가 들어오면서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집집마다 누비이불을 치우면서 화학솜을 넣은 이불로 바꿨다. 당시 ‘카시미론’ 이불솜은 눈송이처럼 부드럽고 가벼웠다. 그 때까지 장롱을 지키고 있던 누비이불은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목화는 우리의 기억 속에서도 차츰 잊혀져 갔다. 지금은 추억 속에서나 만나는 농작물이 됐다. 아이들은 교과서에서나 사진으로 볼 수 있을 뿐이다.

이처럼 아무데서나 쉽게 만날 수 없는 목화이기에 더욱 애뜻하게 다가선다. 기억 저편에서 잠자고 있던 옛 추억도 끄집어내 준다. 아이들도 책 속에서만 봤던 목화를 보면서 신기해한다.

이 목화는 참으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 딸을 시집보내려면 제일 먼저 준비하는 혼수품이었다. 목화솜을 넣은 이불은 필수 혼수품이었다. 집집마다 이 목화솜을 타서 만든 이불 몇 채씩 없는 집이 없었다. 푹신푹신한 이 솜이불 덕에 추운 겨울밤도 거뜬했다.

목화 다래도 훌륭한 주전부리였다. 먹을거리가 늘 부족하던 시절, 어린아이들은 다래를 따 먹었으며 배고픔을 달랬다. 다래의 맛은 떨떠름하면서도 달큼하다.

이 다래가 터지면서 부풀어 오른 하얀 솜꽃이 예쁘다. 기억 저편에 자리하고 있던 옛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목화축제로 더 가까이…

지난 20일부터 이틀간 열린 목화축제 모습

목화는 축제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곡성군은 겸면 목화공원에서 지난 20일과 21일 목화축제를 성황리에 개최했다. 벌써 12회째를 맞은 목화축제는 ‘손으로 만지는 목화의 추억, 가슴으로 느끼는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겸면목화축제는 국내 최대의 목화공원과 목화재배단지에서 목화를 이용해 다양한 체험거리와 볼거리를 마련, 관광객들이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축제에서 빠질 수 없는 체험프로그램으로 축제장은 하루종일 붐볐다. 면실유를 이용한 천연비누 만들기, 무명베 짜기, 물레 돌리기, 목화솜 활타기, 목화 따기, 민속놀이(제기·투호 등), 목화솜을 이용한 핸드폰걸이 만들기, 목화 인절미 떡치기 등이 곳곳에서 펼쳐졌다.
목화의 유래에서부터 파종, 발육과정, 솜 타기, 목화와 인물, 목화와 문학, 목화관련 상품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목화 전시체험관도 운영돼 눈길을 붙잡았다.
심정식 겸면목화축제추진위원회 위원장은 “우리의 기억 속에 잊혀 가는 목화를 소재로 옛 정취와 향수를 느낄 수 있는 다양한 농촌체험과 선조들의 지혜와 자연의 소중함을 한눈에 배울 수 있는 산교육장이 됐다”고 자평했다.


/이경수 기자 kspen@kj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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