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60년 전, 광주 양림동에 노래 부르기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한 소녀가 살았다. 그 소녀는 고대하는 소풍날 즐겁게 친구들과 보낼 생각을 하며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노래 부르기를 마냥 좋아했던 그 소녀는 전국 어린이 성가 부르기 대회가 같은 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아이는 고대했던 소풍 가기를 다음 계절로 미루고 대신 찬송하기를 결심한다. 노래를 너무 좋아하는 소녀는 이렇게 찬양을 하고, 상상도 못 했던 결과를 얻는다. 그 어린 소녀는 대상을 가슴에 품고 성악가로서의 자신의 꿈을 결정한다. 어느새 60년이 지나 이제 노년이 돼버린 그녀는 그 동안 자신이 그려온 삶의 궤적을 담아 우리에게 노래로 전해준다. 그녀의 노래는 모두가 감동이고 듣는 이의 가슴에 행복을 채워준다.

성악가로서 쉼없이 달려 온 삶의 궤적을 담아 우리에게 노래로 희망과 행복을 전해주는 강양은 교수.

그녀가 바로 이 지역에서 가장 존망을 받는 성악가 메조소프라노 강양은이다.

한 기자가 세계적인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가 연습하는 공간을 찾았다. 그리고 기자는 95세가 된 카잘스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선생님 연주는 완벽한데 왜 지금도 하루 6시간씩 연습하십니까?”

카잘스는 기자의 질문에 “왜냐하면 저는 지금도 연습하면서 제가 조금씩 발전하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죠”라고 답한다.

강 교수와의 만남에 나는 같은 질문을 한다.

“교수님 저희 후배들, 학생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시는 듯합니다. 악기도 아닌 목소리로 하루에 한 시간 이상씩 어떻게 연습하시나요?”

강 교수는 “아직도 너무 부족하고 배울 것이 많네요. 노래는 제 삶의 근원이자, 저를 통찰하고 살아가게 하는 저의 모든 것입니다.”

강양은교수, 남편인 지남철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는 필자.

나를 숙연하게 만드는 그녀의 현답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옆을 지키는 남편 지남철 교수에게도 다음과 같이 물었다.

“지 교수님, 방금 강 교수님 이야기를 듣고 섭섭하지 않으셔요?” 지 교수는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강 교수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녀가 부르는 슈만의 ‘여인의 생애’를 가장 좋아합니다. 주름이 늘어갈수록 쌓여가는 강 교수의 관록이 노래에 묻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읽을 때마다 다른 감동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듯이 그녀의 ‘여인의 생애’는 들을 때마다 새로운 감동으로 날 행복하게 합니다.”

메조소프라노 강 교수는 주인공이 되려던 젊은 날을 회상했다. 오페라 여주인공 카르멘이 되기 위해 쉼없이 달려왔던 그 화려함이 지나가고 지금 자신의 모습을 그녀는 “꽃잎을 세다 보니 낙엽이 날린다”고 말한다.

호흡, 소리, 체력 모든 것이 약해지면서 하루하루 달라지는 자신을 바라보고, 더 열심히 소리를 내고, 더욱 더 자신이 공부해온 레퍼토리를 기억하기 위해 힘쓴다고 말한다.

반주자 게리아빈 교수와 광주문화예술회관 대극장 독창회

모나무르 정기연주회 협연하는 강양은 교수.

지금은 고인이 된 음유시인 베이스 오현명 선생의 전성기가 60세 이후라 말할 정도로, 노년의 원숙미와 삶의 역사를 담은 깊이 있는 철학적 연주는 우리에게 깊은 감명을 줬다. 여기에, 여성 저음 가수인 강 교수의 모습이 오현명 선생과 오버랩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얼마 전까지, 광주의 유일한 저음 가수였던 그녀는, 독보적인 존재로 인정받았다. 귀한 소리와 성실함, 그리고 우아한 기품을 지닌 그녀의 모습에 광주시민들은 열광했으며 이러한 순간까지 달려온 그녀의 학구적인 모습에 많은 음악인이 경의를 표한다.

항상 제자들에게 성악가의 덕목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아름다운 소리, 기술, 화려한 제스처가 아니라, 따뜻한 마음이라 말한다.

“사랑할 줄 알아야 사랑을 받는다. 음악을 사랑하고, 음악과 함께하는 모든 것들에 애정을 가지고 대하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후배들에게는 예술가로 사는 삶을 이야기한다. 비굴하지 말 것, 미래를 위한 도전에 머뭇거리지 말고, 젊음을 즐기고 표현할 것을 주장한다.

<최철·조선대 문화학과 초빙교수>

제3의 인생을 사는 강 교수 덕분에 주위의 모든 사람이 행복하다. 그의 삶을 바라보는 우리는 감동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그가 지금까지 그려놓은 삶의 궤적을 따라가 보려 한다.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삶, 그녀의 음악에 담긴 나눔과 배려의 시대정신은 코로나19로 지쳐 우울한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밝게 비추는 희망인 듯하다.

오늘 저자는 한 원로성악가를 통해 감동을 한 움큼 머금었다. 어둠에 질퍽거리는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는 감동을 만났다.

-TIP. 지남철 교수의 외조-

메조소프라노 강 양은의 노래를 듣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는 지남철 교수는 양림교회 지휘자이기도 하다. 안과의사인 그는 남다른 귀로 듣고서 날카롭게 지적해준다 해서 목소리 감별사로도 알려질 정도이다. 강양은 교수가 있기까지 그의 외조는 이 지역 예술계에 정평이 나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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