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문화예술단체 ‘케이야크’는 온라인을 통한 국내외 작가 교류·전시·교육·사회공헌 프로그램 등을 기획·주관하며 새로운 문화 활로를 구축해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엄기준 케이야크 대표가 직접 제작한 ‘라코코 공주’ 조형물과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김애리 기자

차원의 여행자인 공주 ‘라코코’는 최고의 커피콩을 찾아 여행을 하고 있었다. 은하계 지구, 대한민국 곳곳을 돌아다니던 중 마침내 광주 월산동의 한 카페에서 자신이 찾던 ‘최상의 커피’를 발견한다. 커피와 공간이 주는 매력에 흠뻑 빠진 공주는 이곳에 정착한다. ‘라코코(RACOCO)’라는 자신의 이름까지 붙인 카페에는 많은 이들이 찾아오고 있다. 특히 지역 작가들에게 그녀는 뮤즈이자, 활로를 함께 모색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광주 월산동에 위치한 카페 ‘라코코(RACOCO)’는 지역 문화예술인들에게 전시부터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제시하는 거점으로 주목받고 있다.

엄기준 케이야크 대표가 창조한 캐릭터 ‘라코코 공주’.

카페 입구에서는 ‘라코코 공주’와 그녀를 호위하는 ‘커피콩 근위대’의 조형물을 만나볼 수 있다. 카페는 나무와 철골구조물이 어우러져 이색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첨단 IoT 기능을 탑재한 LED 조명까지 더해져 현대적인 세련미와 다양한 매력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라코코를 만든 주인공은 커피 한 잔에도 가치를 발견하는 즐거운 시간을 제공한다는 목표로 다양한 문예 활동을 펼치는 작가이자 문화 기획자다.

주인공은 문화예술교류단체 ‘케이야크’의 엄기준(37) 대표다.

3년여의 준비를 거쳐 올해 7월 문을 연 카페 라코코(RACOCO)는 ‘리얼(Real), 아방가르드(Avant-garde), 콜라보(Collaboration), 코워크(Cowork)’의 약자로 예술 창작 분야와 상업 분야의 하모니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연다는 의미를 지닌다.

카페 라코코 곳곳엔 엄 대표가 직접 3D펜을 이용해 만든 작품들이 진열돼 있다. 지역 청년작가가 만든 소품도 한켠에서 판매되고 있다.

엄 대표가 카페를 연 것은 단순한 영리 추구 때문이 아니다.

조선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뒤 2009년부터 작가로 활동 중인 엄 대표 스스로 열악한 지역 문화예술계 환경을 고려해 실질적인 후원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자처한 것이다.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문화예술 행사 진행시 기업의 후원이 절실하지만 녹록지 않은 상황입니다. 카페 ‘라코코’ 등 다양한 공간과 타 지역 작가들 간 교류 프로그램 진행으로 지역 작가들을 지원하는 하나의 기업으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회화 전공자인 엄 대표가 건축, 인테리어, 조형 등 다방면으로 도전해 모든 것을 자신의 손으로 만들었다는 점도 이채롭다.

현재 엄 대표는 월산동 라코코 1호점을 비롯해 독립 공간으로 회의, 휴식 등 소규모 활동이 가능한 주월동 2호점, 계림동 야크 갤러리 등을 구축·운영하고 있다. 지역 작가들은 이들 장소에서 경험을 공유하고 행사 기획, 작품 전시 등 다양한 창작 요구를 충족하고 있다.

엄기준 대표가 구축한 광주 계림동 ‘야크 갤러리’ 내부 전시 모습.

광주 주월동 라코코 2호점.

‘라코코’가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친 작가들에게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유다.

엄 대표는 라코코 이전에 ‘영아트(Young Art)’를 추구하는 문화예술 교류단체 ‘케이야크’를 2018년 만들었다. 20-40대 청년 작가 회원들과 문화예술이 사회 안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모색·연구하며 예술행사부터 전시·교육·공공미술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활동은 특정 국가나 지역 공간에 제한돼 있지 않다. 광주를 중심으로 활동하되 지역의 정체성에 활력을 불어 넣고 지리적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케이야크는 협업과 새로운 시도를 통해 국내외의 호평을 받고 있다.

특히 엄 대표는 케이야크가 주최·주관한 행사 중 ‘2019년 홍콩 문상고교 교류 프로그램’을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으로 꼽았다.

작가에 대한 꿈을 갖고 있는 홍콩 학생들이 4박5일 일정으로 광주를 방문해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시립미술관, 예술의 거리와 담양 등을 둘러봤다. 또 광주 청소년들과 우정을 쌓는 등 아시아권 청소년들의 화합을 이끌어 냈다.

이 밖에 공공미술 부문에서는 ‘2020 나주 한글마을 한옥계단 공공작업’, ‘2019 대인예술시장 아트아케이드 작업 작품 제작’을 진행했다. 전시 부문의 경우 ‘2018 소촌아트팩토리 청년예술가의 밤전’, ‘2017 광주 뽕뽕브릿지대안공간 광주비엔날레기념 점화전’, ‘중국 송좡예술구 라쿠나전’ 등을 개최해 케이야크의 저력을 보여줬다.

케이야크는 유례없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기획 프로그램과 전시 진행에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덜 겪었다.

대부분 기획 프로그램이 실내가 아닌 야외에서 이뤄졌고 매 기획 전시마다 활동 상황을 SNS를 통한 온라인 소통(소셜 라이브 방송) 형태로 진행해 왔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최근 케이야크가 주최·주관한 ‘제2회 GSAF 광주소셜아트페스티벌’(10월2일-14일, 광주 동구 미로센터)이다. 코로나19로 위축된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중심으로 예술축제와 결합시킨 ‘온라인 소셜 아트페스티벌’이기 때문이다.

북경, 하북성, 청도 출신 중국 작가들과 국내 작가 10명이 참여했다. 이 중 광주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중국 유학생(작가)들에게 전시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폭넓은 예술의 장을 구축했다.

이러한 전시회의 기존 개념을 탈피한 엄 대표의 노력이 코로나19 시대에서는 오히려 새로운 탈출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엄 대표 스스로 지역 예술 활동 범위의 한계와 경제적 부담을 경험한 만큼 새로운 형태의 전시를 기획한 원동력이 됐다.

케이야크는 2019년 독일·중국·한국 작가 40여명이 참여한 ‘2019년 아젠다하이웨이’ 전시회를 진행했다. 실제 작가들의 포트폴리오를 온라인 아젠다 플랫폼에 구축해 기업과 연계한 추가 확장 활동을 기획했으나 결국 자본 부족으로 실현되지 못했다.

엄 대표가 ‘라코코’를 기업으로 성장시키고자 하는 열망이 큰 이유도 당시의 아쉬움에서 비롯됐다. 비영리 문화예술단체를 후원하는 기반이 전무한 데다, 작가 창작 활동 공간도 마땅치 않아서다.

예술인들을 후원해 르네상스 전성기를 견인한 ‘메디치 가문’ 처럼 엄 대표는 현대판 ‘광주형 메디치’를 꿈꾸고 있다.

“광주지역에 문화 콘텐츠 기반의 대형 앵커 시설들이 구축되고 있지만 정작 청년 작가들이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은 극히 일부입니다. 지역 청년 작가들이 좀 더 자신만의 색깔과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든든한 지원군이 되겠습니다.”

끝으로 엄 대표는 지역 후배 작가들을 위한 따뜻한 격려의 말도 잊지 않았다.

“한 가지 일에만 매몰되는 것보다는 여러 사람과 교류하고,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하고 싶은 것을 직접 실현하는 후회없는 경험을 통해 외연을 확장하는 창작자가 되길 바랍니다. 저에게 라코코가 도전이자 꿈이 된 것 처럼요.”

/오승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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