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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내게로 오면 묻지 않고 젖을 거다
안개에게 먹혀도 투정이 없는 달처럼 고양이 푸른 눈에 떠도는 전설처럼
슬픔이 기억으로 오면 섬처럼 잠길 거다
(시조집 ‘뒷모습에 잠깐 빠졌을 뿐입니다’, 가히·문학의전당, 2024)
[시의 눈]
몇 해 전에 난 당신과 헤어졌지요. 주변에 알릴 틈도 없었던 이별에 내 슬픔만 두고 떠난 당신을 먼 나라 국경까지 배웅했습니다. 숲속 흐름처럼 눈물은 조용했으나 새벽을 긷던 샘처럼 가슴은 한없이 깊어졌습니다. 햇발이 갈기로 쏟아지는 언덕에 당신을 두고 총총 내려왔지요. 그후 내 일상엔 지천의 햇볕이, 아니 바늘끝처럼 추운 자상(刺傷)의 비가 뚫듯이 스며들었어요. ‘그러려니’ 하는 세월을 믿을 뿐, ‘나’라는 사회에 소속된 내 존재를 특별한 성문법으로 규정하지 않을, 그러니까 허, 운명의 룰에 따르기로 한 거지요. 그렇더라도, 지금 그대 잃음이 속저리게 밀려옵니다. 나 홀로 입국하길 바라는 당신의 나라엔 ‘안개’조차 어둡습니다. 고양이 눈에 푸르게 ‘떠도는 전설’일까요. 뒤집어 지지 않을 봄의 나이테가 또 그려지고 있군요. 당신이 새삼 내려와 내 눈시울을 탐할 때 무인도나 오륙도처럼 잠깐 잠겼다 솟으리라 생각합니다. 왜냐고 묻지 말기를요. 내 안에 당신이 부린 그 ‘불문율’의 짐이니까요. 한혜영 시인은 충남 서산에서 나 1989년 ‘아동문학연구’ 동시조 당선, 1994년 ‘현대시학’ 시 당선, 1996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했습니다. 시집 ‘태평양을 다리는 세탁소’(2002), ‘올랜도 간다’(2013), 동시집 ‘치과로 간 빨래집게’(2024) 등이 있습니다. 그는 대상을 묘사하되 뜸들이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들어가 그 고투(苦鬪) 과정을 처연히 걸러내는 시인으로, 현재 미국 시애틀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노창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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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22 (목) 12: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