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곳마다 맛과 멋, 흥을 돋우는 축제가 펼쳐진다. 녹음이 짙어지고 세상은 온통 꽃밭이다. 꽃 중의 꽃은 단연 장미다. 장미는 화려하고 아름다운데다 향기가 뛰어나 가히 ‘꽃의 여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문학적·예술적 영감을 제공하며 오랜 기간 인간의 사랑을 받아온 장미도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 파란색 꽃을 피우지 못한다는 점이다. 식물이 파란색 꽃을 피우려면 델피니딘이라는 색소가 필요한데, 장미에는 이를 생산하는 유전자가 없다.

해마다 200종 이상의 새로운 장미가 탄생한다. 지금까지 개발된 장미는 2만5천여 종, 현재 유통되는 것만도 7천 종에 이른다. 보통은 육종교배를 통해 새 품종을 개발하는데, 색소가 없으니 아무리 교배를 반복해도 파란색을 얻을 수가 없는 것이다.

파란 장미는 일찍부터 ‘불가능’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파란 장미를 개발하는 것은 노벨상 수상에 버금가는 업적이 될 것이라고 여겨 왔다. 많은 나라에서 기업과 과학자들이 파란 장미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자이언츠코즈웨이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파란 장미 기사를 접했다. 햄프턴 코트 플라워 쇼에서 세계 최초로 파란 장미를 선보인다는 것이다. 햄프턴 코트 플라워 쇼는 첼시 플라워 쇼와 함께 영국에서 열리는 대표적인 꽃 축제다.

헨리 8세가 소유했던 햄프턴 코트 궁전은 거대한 규모와 기하학적 형태의 정원으로 유명하다. 이 궁전에서 열리는 플라워 쇼는 규모 면에서 단연 세계 최대다. 런던 시내에서 기차로 30여 분 거리의 햄프턴 코트 궁전을 찾았다.

세계 최초의 파란 장미라니, 어떤 모습일까? 무척 궁금했다. 축제장에서 ‘데이비드 오스틴’ 사의 ‘랩소디 인 블루’를 처음 봤다. 기대와는 달리 ‘랩소디 인 블루’는 파란색이라기보다는 진한 보라색에 가까웠다. 그나마도 꽃잎이 다 떨어져 나가고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었다.

아쉬움과 원망이 섞인 눈초리에 관리인은 “꽃을 만져보고 냄새를 맡아 봐야 가치를 알게 되는 것 아니냐?”라며 이상하게 봤다. 그러고 보니 어디에도 ‘만지지 마세요’와 같은 주의사항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 축제라는 것이 본디 사람을 위한 축제지 꽃을 위한 축제는 아니지~.’

이보다 앞서 2004년에는 일본 산토리사가 ‘블루로즈’를 내놓았다. 산토리는 요즘 잘 나가는 ‘히비키’를 만든 위스키 제조회사다. 1980년대 위스키 판매가 부진해지자 미래 산업으로 식물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산토리는 맥주와 와인의 원료인 호프와 포도의 품종개량 기술을 꽃 품종개량에 적용했다. 오랜 연구 끝에 팬지에서 파란색을 만드는 유전자를 추출했고, 이를 장미에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 개발에 들어간 비용은 30억 엔, 파란 장미 시장을 연간 500억 엔 규모로 보고 시작한 투자의 결과였다.

하지만 ‘블루로즈’ 역시 완벽한 파란색이 아닌 연한 보라색에 가깝다. 더구나 유전자 조작기술을 이용한 탓에 생물 다양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이를 입증하는 많은 실험을 거쳐 2009년에서야 ‘산토리 블루로즈 어플로즈(SUNTORY blue rose APPLAUSE)’라는 이름으로 판매에 들어갔다.

20년이 지나 광주 국제화훼종묘에서 ‘랩소디 인 블루’를 다시 만났다. 원통형의 통에 담겨 비행기를 타고 온 ‘랩소디 인 블루’는 여전히 보라색 장미에 가까웠다. 산토리의 ‘블루로즈’는 유전자 변형 생물체에 대한 규제가 엄격한 우리나라에서는 수입이 금지돼 만날 수가 없다.

이들 장미는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상징적인 존재로 평가받고 있다. 그 가능성은 꽃말도 바꿔 놓았다. ‘불가능’에서 ‘가능’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서 ‘영원한 사랑’으로. 파란 물을 들인 장미가 기념일의 축하선물로 인기를 누리고, 꽃말에 기댄 캠페인과 시민운동, 정치단체까지 생겨났다.

곡성세계장미축제를 비롯해 가는 곳마다 장미 천지다. 파랑이 아니더라도, 보라색 장미만 보아도 가슴이 설렌다. 불가능에 도전하는 인간의 의지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그 의지와 노력이 머지않은 미래에 완전한 파란 장미를 꽃 피울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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