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기 전남도립대 교양학부·문학평론가

요즘, 토론토대학에서 언어인류학을 강의하는 마셀 다네시 교수가 쓴 ‘거짓말의 기술’을 재밌게 읽고 있다. 거짓말이 난무하는 시대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책인 듯싶다. 거짓말에도 색깔이 존재한다는 게 저자의 견해다. 새까만 거짓말(Black Lie)은 진실을 왜곡시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악의의 거짓말이요, 새빨간 거짓말(Red Lie)은 금방 들통이 날 게 뻔한 거짓말이며, 하얀 거짓말(White Lie)은 선의의 거짓말이란 것이다. 그의 주장에 어느 정도 공감이 간다.

사실, 거짓말에 최초로 색깔을 입힌 인물은 셰익스피어다. 그는 한 편지에서 “하얀 거짓말을 제외하고 그의 진실성을 의심할 만한 점이 없다는 것을 당신에게 말씀드린다”라고 쓴 바 있다. 이후 ‘하얀 거짓말’은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올랐고, ‘해롭지 않은 사소한 거짓말’이라고 뜻을 달았다. 3세기 유대 문헌인 ‘탈무드’에도 하얀 거짓말이 나오는 걸로 보아, 그 역사는 셰익스피어보다 훨씬 더 오래전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자주 쓰이는 하얀 거짓말은 한마디로 선의를 내포하고 있다. 산에 오를 때 내려오는 등산객에게 “정상이 얼마나 남았나요?”라고 물으면, 십중팔구는 “조금만 가면 됩니다”라고 답한다. 남을 배려하고 용기를 주기 위한 전형적인 하얀 거짓말이다.

특히 하얀 거짓말은 예술작품에서 많이 등장한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에선 장발장이 신부의 집에서 은 촛대를 훔쳤지만, 신부는 경찰에게 ‘자기가 선물로 줬다.’라고 거짓말을 한다. 또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에선 삶의 희망을 주기 위해 담에 잎새를 그려 넣는다. 그리고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아버지는 유태인 수용소에 갇히면서 아들에게 “이건 게임이야, 우리가 참고 견뎌서 1등을 하면 상을 받을 수 있어”라고 말한다. 모두 하얀 거짓말의 예다.

하얀 거짓말의 반대 지점에는 까만 거짓말이 있다. 법정에 선 죄인들은 자신의 혐의점을 덜거나 은폐하려고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른바 까만 거짓말이다. 주로 범죄자나 사기꾼의 거짓말이라 해서 가장 악의적인 거짓말로 꼽힌다.

협박의 뜻을 가진 블랙 메일, 요주의 인물 명단이란 뜻의 블랙 리스트에서 보듯 검은색은 부정의 뜻을 담고 있다. 그래서 블랙 라이 즉, 까만 거짓말은 인종차별적인 단어라는 논란도 있는 이유다.

만약, 인간이 거짓말을 전혀 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실제로 이런 실험을 해본 사람이 있다. 독일의 유명 신문인 지트 도이체 차이퉁 위르겐 슈미더 기자다.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40일간 살아보기를 통해 얻은 경험을 ‘왜 우리는 끊임없이 거짓말을 할까’라는 책에 담았다.

저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기 위해, 친구가 바람을 피웠다고 그의 아내에게 말했다가 친구에게 얻어맞았다. 엄마에게 신을 믿기 어렵다고 말해 부모님을 화나게 했고, 아내가 만든 음식에 맛없다고 했다가 이혼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또 솔직하게 세금 신고했다가 세금 폭탄을 맞았으며, 출근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 상사에게 굿 모닝이라고 인사를 하지 않아 눈총을 샀다. 결과는 일상에서 생활이 안 될 정도로 엉망이었다.

그렇다. 사람이 살다 보면 사소한 거짓말을 하게 된다. 거짓말이 나를 위해서든, 남을 위해서든 누군가 이익이 된다면 이 정도는 괜찮다고 스스로 위안 삼는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경계하고, 더 큰 부정행위로 발전하지 않도록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그게 곧 인문주의자의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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