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기 전남도립대 교양학부·문학평론가

생때같은 우리 자식들이 백주에 도심 한복판에서, 군대에서, 산업현장에서 하루가 멀다 하게 죽어 나가고 있다. 근래 채 해병 사망에 이어 육군 훈련병과 보병 사단 A일병이 목숨을 잃어 슬픔을 안겨주더니, 그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또 열아홉 살 청년이 전주의 한 노동 현장에서 숨졌다. 입사한 지 불과 6개월 만이었다. 정말 돌이키고 싶잖은 일들이다.

우리를 더욱 안타깝게 하는 건 전주의 어린 노동자 유품에서 발견된 메모장이다. 그는 일본어와 영어를 배우고 싶어 했고,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꿈 많은 청년이었다.

그가 남긴 메모장엔 자기 계발, 회사 생활, 저축 등 미래에 대한 목표가 세세히 담겨 있다. 특히 올해 목표는 ‘남의 이야기 함부로 하지 않기’,‘하기 전에 겁먹지 말기’,‘기록하는 습관 들이기’,‘구체적인 미래 목표 세우기’,‘미술·사진 등 예체능 계열 손대보기’ 등이 적혀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돈을 아끼지 말고, 사진을 많이 찍어 두자’는 목표도 덧붙였다. 마치 자신에게 닥쳐올 불운을 예언이라도 한 듯한 내용 같아 마음을 아리게 한다.

우리를 더욱 마음 아프게 하는 건, 월급 대부분을 저축해 목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향후 군대에 갔을 때 받을 월급까지 생각하며 2027년 2월까지 6천만 원을 모으겠단 각오다. 정말 속이 꽉 찬 청년이었다. 그런데 그 목표가 물거품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렇게 열심히 살려고 했던 청년이었는데, 한 사람의 세상이 허무하게 끝나버렸다는 게 너무나도 안타깝고 가슴이 미어진다.

이런 상황은 너무도 낯익기에 비통함이 더하다. 일일이 열거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만, 지난 2021년 경기도 평택항에서 한 대학생이 아르바이트 중 무게 300㎏가량의 지지대에 깔려 숨졌다. 2016년엔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공 19세 김 군이, 2018년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24세 젊은이가 목숨을 잃었다.

산업현장의 사망 사고는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만도 882명이 죽어 나갔단다. 이게 선진국이라고 자처하는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우리나라의 노동 현장이 개판이라는 건 1970년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를 통해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산업현장에서 잇따르는 청년들의 죽음을 어떻게 설명할까.

전시도 아닌데 한 해 1천여 명이 목숨을 잃는 이 ‘비정상 사회’와 맞서 싸우는 일은 늘 슬픔에 젖은 유가족들의 몫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입에 발린 말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되뇔 게 아니라, 이제는 하나의 목숨이라도 더 살리자는 절규에 응답해야 할 것이다.

산업재해 사망자 유족들과 노동계의 피어린 노력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긴 했지만, 효율이 아닌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인식은 산업현장에 아직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음을 연이은 죽음들이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재계의 입김에 휘둘려 처벌 완화, 적용 제한, 시행 유예 등으로 누더기가 돼버린 입법 과정만 봐도 그렇다.

지금, 이 시간에도 어느 곳에서는 위험한 작업 환경에서 일하다 죽지 않을 권리를 외치며 절규하는 노동자가 있다. 아침에 출근했다가 저녁에 돌아오지 못하는 노동자가 더는 나와선 안 된다. 물론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도 필요하지만, 그에 앞서 사고 자체를 막을 수 있는 강력한 제도적 장치가 먼저다.

생때같은 우리의 자식들이 잇따라 죽어 나가는 현실에 대해 이제 국가가 답할 차례다. 국가의 존재 이유를 다시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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