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02(토)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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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헤테로포니: 10년의 연주’ 전시가 열리고 있는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G.MAP)에서 김 작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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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개의 검은 구멍, 숨소리’는 작가의 연작 중 ‘숨구멍’과 관련된 4번째 작품이다. 그가 ‘헤테로포니’ 전시에 출품한 이 작품은 인터렉티브 영상 작업으로, 이미지 맵핑을 통해 실물 회화에 영상과 소리를 입혀낸 결과물이다. 지난해 전남도립미술관에서 기술 협력을 통해 제작, 선보여졌다.
“작가로서의 언어가 어느 정도 구체화된다면 그때 새로운 확장을 시도해보고 싶었어요. 작년에 정말 운 좋게도 그런 기회가 찾아왔고, 가상 세계를 통해 제 작품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됐어요. 저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숨소리가 녹음돼 각기 다른 구멍들에서 퍼져 나오는 거죠.”
들숨과 날숨이 섞인 호흡기관은 서로 연결되고 굴절되며 다양한 숨소리를 들려준다. 인간이 지닌 연약한 구멍을 다룬 일련의 작업들은 고통의 기억과 불안정한 생의 흔적을 은유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업은 미세한 어떤 존재의 ‘소리’에 꾸준히 천착해온 작가의 작품관과도 맥을 함께 한다.
“개인의 경험과 기억으로부터 오는 상상을 구심점 삼아 작업을 확립해가고 있어요. 결국엔 한 작가의 오리지널한 서사가 굉장히 중요하겠단 생각을 해요. 저작권에 위배되지 않는다면 모든 이미지를 사용할 수 있는 플랫폼 세상 속 인간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이미지와 그 이야기를 찾아내는 일이요.”
예술가의 시선, 예술가가 무언가를 보게 하는 힘은 어디서 오는지 탐구해오고 있는 작가는 ‘모항’(母港) 즉 자신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기억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작가의 고향은 영취산 진달래 군락지로 유명한 여수 중흥동 일대다. 이곳은 대규모 화학단지가 들어서며 거주민들이 떠나고 현재는 본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태어나서부터 19살 때까지 지냈던 곳이기에 이는 자연스럽게 그의 작업 근원이 됐다.
“제게 고향은 기피하고 싶은 내밀한 기억이면서도 잊어서는 안 될 ‘모항’이라 생각해요. 어떤 분들은 트라우마냐고 물어보시기도 하는데, 그렇진 않아요. 강렬한 기억들로 가득한 공간이죠. 24시간 내내 켜진 공장 불빛이나 화학 물질 냄새를 맡으며 나선 등하굣길 같은 기억이요. 폭발사고를 목격하기도 했고요. 어렸을 땐 단순히 고향을 떠나고 싶단 생각뿐이었어요. 애써 외면해왔지만 결국엔 내가 어디로부터 왔는지 이해하는 것이 작업의 진정한 시작이란 걸 깨닫게 됐어요.”
2008년 떠난 인도 유학은 작가로서의 정체성과 예술의 근원에 대한 답을 찾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됐다. 약 7년 간 인도에서 지내는 동안 작가는 인간이 상상하는 모든 것을 주변 환경과 연결 짓고 이를 작업으로 표현해내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했다.
이후로도 사막이나 바닷가 도시 등 고향을 떠나 여러 지역에 머문 그는 소멸해가는 아주 작은 존재와 연약한 것들의 움직임 그리고 소리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곳에 켜켜이 쌓여있는 시간과 대화하는 작업을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오고 있다.
오는 9월 제15회 광주비엔날레 캐나다 파빌리온에서 ‘집’을 주제로 선보일 작업은 이때까지의 작품들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이미지일 것이라는 게 작가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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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만 9번을 갈아타고서 도착한 캐나다 최북단 킨가이트 지역에서 작가는 극한의 환경 가운데 예술활동을 이어가는 이누이트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지난해 11월에는 이들의 삶과 예술, 환경 등을 리서치해 한국 결과보고전에서 한지 이글루 작품 ‘신화가 거주하는 장소’를 선보였고, 지난 6월에는 두 번째로 킨가이트를 찾아 이누이트 예술가들과 쇼케이스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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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의 끝이 있다면 마치 이곳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것들을 느끼며 작업하기에 첫 번째 방문에선 이들에게 ‘영혼의 모양’에 대해 물었어요. 그림자, 어둠, 잎의 혀, 뼈의 얼굴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죠. 그리고 이에 대한 답가로 전 이들이 상상하는 ‘영혼의 모양’을 그림으로 나타냈어요. 앞선 방문이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면 이번엔 북극의 여름, 드러난 ‘땅’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여기에 제가 기억하는 고향과 집을 연결시켜 보다 내면적인 이야기를 꺼내려 합니다. 큰 범위의 생태를 다룬다기보다는 제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에 대한 생각을 오롯이 담아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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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게 올해는 여러모로 의미 있는 터닝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오는 11월 세계 대표적인 예술의 도시로 손꼽히는 인도 뭄바이에서의 개인전을 앞두고 있어서다. 작가로서 많은 성장을 이룬 인도에서 약 10년 만에 갖는 개인전인 만큼 그간 한국에서 펼쳐낸 다양한 작품들이 소개될 예정이다.
“그간의 작업들을 정리하는 한 해가 될 것 같아요. 작가로서 잘 버티고 있는 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고요. 살펴보니 제 작업 중에 유독 ‘물’과 관련된 것들이 많더라고요. 꽃처럼 피어난 곰팡이나 균사를 표현한 수많은 선들의 모습이 담긴 회화들을 대거 선보일 계획입니다.”
미시적인 존재와 자신의 기억을 연결하면서 독특한 예술세계를 펼쳐나가고 있는 작가는 지역 미술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는 지역 내 여러 문화예술기관이 진행한 프로젝트, 프로그램 등에서 다양한 분야 전공자들과의 만남이 주는 의미에 대해 언급했다.
“제가 다루는 이슈에 대해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 좋았던 것 같아요. 이러한 만남은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디딤돌로 작용하면서 스스로를 다각도에서 살펴볼 수 있게 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가 이뤄질 수 있는 비평의 장이 지역 내에서 더욱 활발하게 진행됐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이제 막 발돋움을 시작한 신진 예술인, 작품세계를 확립한 작가 등 작업 단계에 맞는 다양한 비평이 필요합니다. 작품 하나를 만들어내기까지는 무수한 과정과 유기적인 관계가 따른다고 생각해요. 오래 전부터 관심 가져왔고 앞으로도 확장해갈 ‘신화’ 그리고 신화가 거주하는 ‘장소’에 관한 작업을 계속해서 다루고 싶어요.”
/최명진 기자
최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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