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킨슨병으로 투병 중인 이도화 시인이 투병 중 일기처럼 써온 신작시들을 모아 시집을 펴냈다. 시인이 지난해 ‘사이펀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후 집중적으로 창작한 시편을 엮어 출간한 시집 ‘온·오프는 로봇 명령어가 아니다’(작가마을刊)이다. 고희(古稀)에 이른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그간 생애의 곡절과 파란을 담담하면서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시인은 이색적인 경력의 소유자다. 이등항해사로 일하다 미국 메사추세츠대에서 경영학 석사, 퍼듀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아 포스코경영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이후 인제대와 동아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했다.

파킨슨병 증상은 16년 전 처음 감지됐다. 파킨슨 진단을 받으며 대학에서 정년 3년을 앞두고 명예퇴직을 한 뒤 귀촌해 학창시절 이루지 못한 문학도의 길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2017년 ‘부산시인’과 ‘부산시조’ 활동을 하며 시집 ‘출항’을 펴내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해 계간 ‘사이펀’ 신인상에 단성돼 문단에 나오면서 시인은 새로운 창작의 세계를 열게 됐다. 이번 시집이 그 결과물인 셈이다.

총 4부 60여편 시가 수록된 이번 시집 ‘온·오프는 로봇 명령어가 아니다’는 제목이 암시하듯 시인의 자화상과 다름 없다. 파킨슨병으로 공간에 제약을 받는 시인의 일상과 이에 따른 추억과 상상력의 확대가 낳은 시의 이미지는 아련하면서도 화자의 당당한 시선으로 그려졌다.

특히 온(on)과 오프(off)는 파킨슨병과도 연관돼 있다. 약을 복용한 뒤 약 효과가 발생하는 시점에서 끝나는 시점까지의 시간을 온, 약 효과가 사라지고 없는 시간을 오프라 칭하기 때문이다.

깊은 사유가 내재된 서사적 기교는 자유롭고, 대상에 대한 객관적 관조의 시선은 날카롭게 빛난다. 특히 파킨슨 시편들이 두드러진다. 그만큼 질곡의 언어가 시인을 감싸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번 시집에 대해 엄원태 시인은 “생애의 곡절과 파란의 무늬를 담담하면서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생활 시’의 전범같은 평이한 언어와 가볍지만은 않은 깊이를 담보하는 사유의 절묘한 어우러짐이 인상 깊다”고 평했다.

또 김정수 시인은 해설을 통해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에서 자유 의지로 선택한 결과가 어떻게 물결을 일으키고, 그 물결이 일으킨 삶의 무늬가 얼마나 선명한지를 보여준다”며 “시인은 삶의 방향을 바꿀 중요한 선택 이후 평범했던 날들이 어찌 새롭고 특별한 날들로 옷을 갈아입는지, 이로써 경험의 세계와 결합한 여생이 어떤 여정을 거쳐 운행하는지를 과장되지 않은 진솔한 언어로 들려준다”고 밝혔다.

한편 이도하 시인은 경북 달성에서 태어나 경북고 재학 중 문학과 철학을 꿈꿨지만, 학창시절의 꿈을 뒤로 한 채 한국해양대를 졸업, 이등항해사로 일하며 바다를 체험했다. 이후 미국 메사추세츠대와 퍼듀대에서 학위를 마치고 포스코경영연구소에서 재직했으며, 후학양성에 뜻을 둬 인제대와 동아대에서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그는 김해 상동에서 시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최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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