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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의 본명은 김병연이다. 1807년 4월22일, 경기도 양주목에서 태어났다.
그는 16세 때 과거에 급제했다. 임금이 주재하는 대과가 아니라 지방관이 주재하는 ‘향시’였다. 글재주가 좋았던 그는 ‘김익순을 논박하라.’는 출제자의 의도에 맞게 작성하여 장원 급제했다. 어떤 내용인지 다시 읽어본다.
선대왕이 보고 계시니 넌 구천에도 못 가며,
한 번 죽음은 가볍고 만 번 죽어 마땅하리라.
네 치욕은 우리 동국 역사에 길이 웃음거리로 남으리라!
이 글에서 김병연은 김익순을 신랄하게 논박하고 있다. 홍경래 난이 일어났을 때 반군에게 저항하지 않고 항복한 것을 논박하고, 왕을 배반한 것을 두고는 ‘동국 역사에 웃음거리로 남으리라!’고 논박하고 있다. 김익순은 누구인가? 1764년에 태어나서 1812년에 생을 마감한 안동 김씨로 김병연의 할아버지다. 매관매직으로 5품 관료인 선천부사에 오른 자다. 선천은 평안북도에 있다. 그는 선정을 베풀기보다 폭정을 일삼았다. 그 결과 홍경래 난이 일어났다. 그 해가 김병연의 나이 4실 때인 1811년이고, 그 이듬해에 김익순은 처형 당했다.
신랄하게 논박했던 김익순이 자신의 할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 김병연은 부끄러웠다. 무엇이 부끄러웠을까? 자기 할아버지를 논박한 일? 자기 할아버지가 폭정을 일삼은 일? 왕을 배신한 일? 어쨌든 김병연은 자숙하고 반성한다는 뜻으로 삿갓을 쓰고 다녔는데, 이런 그를 ‘김삿갓’이라 부른다. 명국환은 ‘방랑시인 김삿갓’이란 제목의 노래를 불러 기렸다.
이런 김병연에 대하여 나는 서운한 마음 금할 수 없다. 그는 향시에 장원으로 급제한 자다. 벼슬에 오를 수 있었고, 남다른 영특함으로 선정을 베풀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김병연은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22세 때인 1829년 이후 1863년 3월29일까지 무려 34년 동안이나 방랑 생활을 했다. 하늘 보기에 부끄럽다는 이유로 삿갓을 썼지만, 그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이었다.
다음의 파자(破字) 일화를 읽어보라. 그가 무엇을 부끄러워하고 있는가?
안주인 ‘人良卜一(인량복일)하오리까?’ 食(밥 식) + 上(윗 상) ‘밥상 올릴까요?’
친구 ‘月月山山(월월산산)하거든.’ 朋(벗 붕) + 出(날 출) ‘친구가 나가면…….’
김삿갓 ‘丁口竹夭(정구죽요)구나’ 可(옳을 가) + 笑(웃을 소) ‘가소롭다.’ ‘이 亞心土白(아심토백)아,’ 惡(나쁠 악) + 者(놈 자) ‘이 나쁜 놈아,’‘犬者禾重(견자화중)아!’ 猪(돼지 저) + 種(씨 종) ‘돼지 새끼야.’
부끄러움은 없다. 김병연은 친구를 향하여 ‘돼지 새끼’라고 욕하고 있다. 분노만 차 있을 뿐이다. 친구를 향한 분노인 듯하지만 실상은 끼니조차 해결하지 못한 자기 자신을 향한 분노이다.
성경에서 소개하는 달란트 이야기가 생각난다. 주인이 타국으로 떠날 때 종들에게 달란트를 맡겼다. 세월이 흘러 종들이 주인 앞에 나아와 회계한다.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다섯 달란트를 추가하여 열 달란트를 내놓았다. 주인은 그에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축복한다. 두 달란트 받은 종은 두 달란트를 추가하여 네 달란트를 내놓았다. 그에게도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축복한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받은 그대로 한 달란트만 가지고 왔다. 주인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저주한다.
김병연의 삶은 어떠한가? ‘착하고 충성된 종’의 삶인가? 아니면 ‘악하고 게으른 종’의 삶인가? 무등산 자락에는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에 ‘김삿갓 종명지’가 있고,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 ‘김삿갓 동산’도 있다. 이런 시설을 통해 김삿갓의 삶을 기리고 있다. 어떤 분은 그의 삶을 초아의 삶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의 생각은 다르다. 이야깃거리는 될지 몰라도 본받을 삶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한다.
<고병균 약력>
▲공무원문학 수필 신인상
▲동산문학 작가회 회장, 광주문인협회 이사
▲동산작가문학상 산문 분야 대상
▲저서 : 연자시 ‘가족사랑 이야기’, 수필 ‘임진왜란 상(上)’
▲강의 : 일곡도서관 수필 쓰기 교실(201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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