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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자연스레 경제적 어려움과 정치적 이슈가 중심에 자리 잡게 마련이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은 20%대로 추락했으며, 물가 상승과 의료 대란, 그리고 김건희 여사 특검을 둘러싼 논란이 국민들의 심리를 뒤흔들고 있다.
올해 전통시장에서의 차례상 비용은 지난해보다 1.8% 증가해 약 28만원에 달했고, 직장인 중 40%가 추석 명절 상여금을 받지 못했다. 물가 상승과 경제적 불안으로 많은 국민들은 명절 차례상 준비도 버거운 상황이었다. ‘풍요로운 한가위’를 바라는 인사조차 경제적 어려움이 덮친 밥상 앞에서 조심스러운 표현이 됐다.
이번 추석 밥상머리의 주요 화두는 단연 ‘의료대란’이었다. 응급실 뺑뺑이 사태 등 의료 붕괴의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여·야 의정협의체’ 출범은 불발됐다.
의료 서비스의 질 저하를 우려하면서도 정작 환자들 곁을 떠나버린 전공의들 뒤로, 그간 묵묵히 의료 현장을 지킨 의료종사자들의 헌신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의대 증원과 의료개혁의 취지는 옳은 방향일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제대로 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갈등이 지속될 수록, 국민이 지불하는 유·무형의 비용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그 비용은 온전히 국민의 몫이 된 셈이다.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는 가운데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한다는 의대 정원 문제는 결국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재난이 되고 말았다.
다음 이슈는 바로 ‘김건희 특검법’이다. 야권은 김건희 여사에 대한 특검법을 추진하며, 정부 여당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공천 개입 의혹 등 8가지 혐의를 조사하기 위한 특검법이 발의됐고, 민주당은 이를 통해 진실을 규명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
이 같은 상황에서 추석을 앞두고 시작된 김건희 여사의 광폭 행보는 과연 국민의 여론을 잠재울 묘안인 것인지 의문이 든다.
이처럼 물가 상승, 의료대란, 김건희 특검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 맞물려 이번 추석 민심은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하고 불안정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정책과 국정 운영은 국민들에게 충분한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정부의 대응이 미흡하다는 평가가 이어지면서 국민들의 불안과 불만은 커져만 간다. 국민들은 그들의 삶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답을 찾고 싶어 한다.
윤 대통령의 국정 실패 원인 가운데 하나는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는 안이함이다. 대통령 본인에게 지지율 몰락은 그저 숫자의 변화에 불과하겠으나, 국민들이 대통령 지지율로 보여주는 것은 간절함이고 먹고사는 문제 그 자체다.
정부가 이를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민심을 제대로 읽어낼지가 향후 정국의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추석 메시지를 통해 “국민 여러분께서 함께 뛰어주신 덕분에 밝고 희망찬 내일이 열리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네 밥상머리엔 ‘어둡고 불안한 내일’만 잔뜩 올랐는데, 용산 밥상엔 어떻게 ‘밝고 희망찬 내일’이 오른 것일까?
어떤 일에 마음을 쓰는 것을 용심(用心)이라 한다. 공자는 ‘종일 배부르게 먹고 마음 쓰는 바가 없다면 문제가 심각하다(포식종일 무소용심 난의재 : 飽食終日 無所用心 難矣哉)’고 했다.
이는 자신의 배부름에만 만족하며 현실의 문제를 외면할 때, 더 큰 위기가 닥칠 수 있음을 경계한 말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진정으로 국민의 삶에 마음을 쓰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때다. 그렇지 않다면, ‘밝고 희망찬 내일’은 그저 공허한 용심(龍心), 용산의 마음에만 그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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