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봉에 가까워질수록 아름다운 바위들이 드넓게 펼쳐진다. 황금색을 띠고 있는 영암들판도 풍요롭게 다가온다.

신령스러운 바위들로 똘똘 뭉친 월출산 곳곳에는 여러 사찰이 둥지를 틀었다. 아름다운 바위봉우리를 등지고 도갑사 무위사 천황사 같은 절집이 자리하고, 월남사지 용암사지 같은 폐사지에는 석탑과 마애불이 남아있다. 구정봉 8부 능선 험준한 산골에 자리한 용암사지에는 삼층석탑과 마애여래좌상이 비바람 속에서도 자기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동안 용암사지에 가려면 구정봉에서 가파른 산비탈을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가야 했다. 이런 불편함을 해소하고자 지난해 대동저수지에서 큰골을 통해 용암사지로 가는 탐방로를 개설해 구정봉까지 연결했다.

월출산 마애여래좌상(국보 제144호)은 전체높이가 8.6m에 이르고, 신체높이만 해도 7m에 달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국보 월출산 마애여래좌상(국보 제144호)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서 ‘하늘아래 첫 부처길’이라 부른다.

하늘아래 첫 부처길은 기찬랜드에서 시작되지만 대동제주차장에서 출발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월출산국립공원 출입구를 지나 숲속 임도를 따라 걷는 길은 고즈넉하다. 임도를 따라 걷다보니 상수도수원지에 도착한다. 상수원을 지나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울창한 숲길을 걷는다. 계곡에는 장구한 세월동안 위쪽에서 흘러내린 바위들이 자리하고 있다. 물은 깔끔하게 다듬어진 바위 사이를 돌고 돌면서 청아하게 흘러간다.

인공적인 소리라고는 들려오지 않는 숲길은 한없이 고요하고 한적하다. 하늘아래 첫 부처를 만나러 가는 길은 자연과 동화되는 길이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부처다운 삶이 아닐까? 올라갈수록 바위들이 점점 많아진다.

용암사지에 가까워지자 파란 이끼로 뒤덮인 석종형 부도 두 기가 눈에 띈다. 이끼 낀 부도는 우리에게 탐욕과 분노를 내려놓고 살라한다. 부도에서 가파른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길에서는 시누대숲이 청신한 기운을 내뿜어준다. 시누대 숲길을 지나자 300평 가까운 공터가 나타난다. 용암사라는 절이 있었던 곳이다.

고려초기에 세워진 용암사지 삼층석탑(보물 제1283호)은 높이 4.65m로 절터 남동쪽 언덕에 우뚝 서있다.

용암사지에는 지금까지도 기와조각과 주춧돌이 남아있다. 돌확과 샘터도 보인다. 폐사지는 잡초로 가득 차 있지만 부처의 향기는 그대로 전해진다. 절터 바로 옆 언덕에 삼층석탑이 있어서다. 고려초기에 세워진 용암사지 삼층석탑(보물 제1283호)은 높이 4.65m로 남동쪽 언덕에 우뚝 서있다. 1985년 이곳에서 용암사라 쓰인 기와가 출토돼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용암사로 추정하게 됐다.

용암사지에서 산길을 따라 100m쯤 올라가니 거대한 마애불상이 근엄한 표정으로 맞이한다. 월출산 마애여래좌상(국보 제144호)은 전체높이가 8.6m에 이르고, 신체높이만 해도 7m에 달한다. 불상은 얼굴과 팔다리 등이 높게 돋을새김 돼있다. 오른쪽 무릎 옆에는 86㎝ 높이의 동자상이 부처님을 향해 예배하고 있다.

해발 600m 가파른 산비탈 바위절벽에 이렇게 박진감 넘치고 세밀하게 조각을 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

월출산 마애여래좌상은 신라말기에서 고려초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월출산 마애여래좌상보다 해발고도가 훨씬 높은 곳에 자리한 사찰은 많다. 하지만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가 월출산 마애여래좌상보다 높은 곳에 자리한 사찰은 없다.

월출산 마애여래좌상에서 산허리를 돌아 100m 떨어진 곳에 또 하나의 삼층석탑이 있다. 이곳 삼층석탑은 마애여래좌상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삼층석탑은 별도의 기단을 만들지 않고 자연석 위에 석탑을 쌓아올렸다. 근엄하기보다는 친근하게 느껴진다.

삼층석탑 주변에도 아기자기한 바위들이 갖가지 형상으로 솟아있다. 삼층석탑에서 바라보는 조망 또한 경쾌하다. 큰골을 사이에 두고 노적봉, 사리봉으로 이어지는 바위봉우리들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황금색을 띠고 있는 영암들판도 풍요롭게 다가온다. 황금색 들판을 가르면서 영산강이 유유히 흘러간다.

구정봉 정상을 이루고 있는 바위에는 아홉 개의 돌우물이 있다. 그래서 봉우리 이름을 구정봉(九井峯)이라 했다.

마애불상과 삼층석탑을 참배하고 구정봉으로 향한다. 구정봉에 가까워질수록 아름다운 바위들이 드넓게 펼쳐진다. 사람 한 명 겨우 끼어갈 수 있는 좁은 굴을 통과해야 구정봉에 도착한다. 구정봉 정상을 이루고 있는 바위에는 아홉 개의 돌우물이 있다. 그래서 봉우리 이름을 구정봉(九井峯)이라 했다.

월출산은 어디 한곳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지만 그중에서도 구정봉에서 보는 풍경이 가장 아름답다. 북동쪽에 뾰족하게 솟은 월출산 정상 천황봉과 푸른 숲 위에 불쑥불쑥 솟은 수많은 바위봉우리들은 천하절경을 이뤘다. 월출산 정상 뒤로는 영암과 나주, 강진에 솟은 산들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과연 ‘호남의 금강산’이라 부를만하다.

구정봉에서 내려가는 길은 여러 갈래다. 우리는 ‘하늘아래 첫 부처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월출산의 대표적인 사찰 도갑사로 내려가기로 했다. 고도를 낮추면서 미왕재로 향한다. 능선길을 걷다보면 월출산 능선이 도갑산 월각산으로 이어가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안겨온다. 곡선을 그리며 이어지는 산줄기 아래에는 영암과 강진 성전면의 마을과 들판이 평화롭게 펼쳐진다. 미왕재에 도착하니 억새들이 부드럽게 춤을 춘다.

도갑사 도선수미비(보물 제1395호). 보통 비석은 한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는데, 이 비석은 도선국사와 수미선사 두 사람의 공동명의로 돼 있다.

한동안 가파른 숲길을 걷고 나니 물소리가 들려온다. 조용한 숲길에서 듣는 물소리가 고요하고 청아하다. 계곡길을 따라 걷다가 도갑사 도선수미비(보물 제1395호)를 만난다. 보통 비석은 한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는데, 이 비석은 도선국사와 수미선사 두 사람의 공동명의로 돼 있다. 비석은 규모도 크고 조각솜씨가 범상치 않다.

도갑사는 신라 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 대웅보전 앞마당에는 느티나무 고목이 도량을 지키고 있고, 고려초기에 조성된 오층석탑(보물 제1432호)이 당당하게 서있다.

용추폭포 위쪽 다리를 건너 돌계단을 올라가면 도갑사 미륵전이다. 미륵전에는 전각 이름과는 달리 석조여래좌상(보물 제89호)이 모셔져 있다. 도갑사 경내로 들어와 천불전과 명부전 사이를 지나 2층 대웅보전 앞마당에 선다. 도갑사는 신라 말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 대웅보전 앞마당에는 느티나무 고목이 도량을 지키고 있고, 고려초기에 조성된 오층석탑(보물 제1432호)이 당당하게 서있다.

도갑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인 해탈문(국보 제50호).

도갑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인 해탈문(국보 제50호)을 넘는다. 도갑사 해탈문은 1473년 중건했으며, 좌우에 금강역사상이 안치돼 있다. 맞배지붕을 한 도갑사 해탈문은 소박하고 담백하다. 도갑사의 상징적 건물인 해탈문이 절집을 나서는 중생에게 소박하고 담백하게 살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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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쪽지
‘월출산 하늘아래 첫 부처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국보 월출산 마애여래좌상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마애여래좌상을 지나 구정봉에 오르면 월출산을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다.
※코스 : 월출산 기찬랜드→대동제→상수원→용암사지 삼층석탑→월출산 마애여래좌상→구정봉(왕복)
※거리, 소요시간 : 편도 4.8㎞(왕복 9.6㎞), 편도 2시간 45분(왕복 4시간 45분) 소요
※도갑사 하산 코스 : 구정봉→미왕재(억새밭)→도갑사(3.9㎞, 1시간 50분 소요)
※출발지 내비게이션 주소 : 영암 기찬랜드주차장( 영암군 영암읍 회문리 417-2), 대동제주차장(영암군 영암읍 회문리 산 19-2)
<장갑수·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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