苦雨歎(고우탄)
다산 정약용

지겹게도 오는 비 지겹게도 오는 비
맑은 해 안 나오고 구름도 안 열리네
밀 보리 쓰러진대도 일어나지 못하네.
苦雨苦雨雨苦來 白日不出雲不開
고우고우우고래 백일불출운불개
村童食之酸沁骨 麥臥不起誰知哉
촌동식지산심골 맥와불기수지재


‘고’(苦)는 맛이 ‘쓰다’는 뜻을 담지만 ‘모질다·지겹다’는 뜻도 담고 있다. 지겹도록 더운 여름을 ‘고열’이라 했고, 모질고 지겹게 비가 내는 것을 ‘고우’라고도 했다. 인생을 고통스럽게 사는 것을 ‘고행’이라고 했다면 얼마나 험난한 세상을 살았던 것인가를 알게 한다. 여름 장마에 ‘이제 그만!’할 정도로 지겹게 비가 내렸겠다. ‘지겨운 비! 지겨운 비, 지겹게도 오는 비에, 밝은 해는 나오지 않고 지금은 구름도 안 열린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쓰러진 밀 보리 일어나지 못함을 누가 알랴’(苦雨歎)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고시체다.

작가는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으로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실학자이다. 1795년 병조참의로 있을 때 주문모사건에 연루돼 금정도찰방으로 좌천됐다가 규장각의 부사직을 맡았다. 1797년 다시 승지에 올랐으나 모함을 받자 자명소를 올려 사의를 표명했던 강직한 인물로 알려진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지겨운 비! 지겨운 비, 지겹게도 오는 비에 / 밝은 해 나오지 않고 구름도 안 열리네 // 시골 아이 따먹으니 시큼한 물이 뼈에 스며도 / 쓰러진 밀 보리 일어나지 못함을 누가 알겠는가]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지겨운 비를 탄식하며]로 번역된다. 지겹도록 억수같은 비가 내렸던 모양이다. 사람은 가뭄이 들면 비가 오기를 학수고대 비오기를 기대하는 것과 대조를 이루는 불합리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모순 속의 불합리와 끝없는 투쟁이 된다. 이 시는 모두 6구로 돼 있다. 가운데 2연이 빠져있는 바, 아래와 같은 시상이다. [보리는 싹이 나오고 밀도 가로눕고 있는데(大麥生芽小麥臥) / 돌배와 산 앵두만이 쑥쑥 커가고 있구나(只肥鼠梨與雀梅)]라고 읊었다. 전후구가 대비적인 면을 보인 시상이다.


시인은 비의 지겨움이란 선경을 읊고 있다. ‘지겨운 비! 지겨운 비, 지겹게도 오는 비’를 연신 읊어대더니만 밝은 해는 나오지 않고 구름도 문이 열리지 않다고 했다. 하늘이 꽉 막혀 비를 뿌려대는 날씨의 지겨움이란 시상을 이끌어 내고 있다.


화자는 가운데 구에 이어진 산 앵두에 대한 시상을 이어가고 있다. 시골아이들이 산 앵두를 따먹으면서 시큼한 물이 뼈에 깊이 스며도, 쓰러진 밀 보리 일어나지 못함을 누가 알겠는가를 되묻고 있다. 지겹도록 내리는 비를 해결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적절한 해답도 없다.

※한자와 어구

苦雨: 지겨운 비. 苦雨: 지겹기만 한 비. 雨苦來: 지겹게 비가 내리다. 白日: 밝은 해. 不出: 나오지 않는다. 雲不開: 구름이 열리지 않는다. // 村童: 촌아이들. 食之: 먹다. 酸沁骨: 시큼한 물이 뼈에 묻어도. 麥臥: 쓰러진 보리. 不起: 일어나지 않다. 誰知哉: 누가 알겠는가.

<시조시인·문학평론가 ㈔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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