磨天嶺上吟(마천령상음)
송정부인

걷고도 또 걸어서 마천령 이르더니
동해바다 끊임없고 거울처럼 맑았어라
만 리길 무슨 일로 와 삼종도리 귀한걸.
行行遂至摩天嶺 東海無涯鏡面乎
행행수지마천령 동해무애경면호
萬里婦人何事到 三從義重一身輕
만리부인하사도 삼종의중일신경


여인네들에겐 삼종지도(三從之道) 지키는 것을 근본으로 여겼다. 어려서는 부모님 말씀을 순종하면서 따르고, 결혼 나이에 들어 혼사한 후에는 남편의 말을 따르며, 나이 들어 늙었을 때는 자식의 말에 순종해야 한다는 뜻이다. 요즘으로 말한다면 여자의 인권을 무시한 행위라고 야단이겠지만, 우리 선현들은 금언과 같이 여기면서 잘 지켰다. ‘걷고 또 걸어서 겨우 마천령에 이르니, 동해바다 끊임이 없고 거울 같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삼종의 도리는 귀하기만 하고 일신은 가볍다네’(摩天嶺上吟)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송정부인(宋貞夫人)의 생몰연대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다음과 같은 기록을 찾을 수 있다. 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의 부인이고, 조선4대 여류시인인 송덕봉 여류시인이다. 송정부인의 외손녀인 해남윤씨(윤선도의 당고모)가 옥봉 백광훈의 큰 며느리(송호 백진남 부인)임이 밝혀지고 있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걷고 또 걸어 마천령에 이르니 / 동해바다 끊임없고 거울 같구나 // 아녀자의 몸인데 무슨 일로 이렇게 만 리길 왔던가 / 삼종 도리 귀하기만 하고 일신은 이렇게 가벼운 걸]이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마천령 위에서 읊다]로 번역된다. 함남 단천시에서 함북 김책시로 넘는 고개다. 고개(嶺)가 하늘(天)에 닿을 듯이 높은 곳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이 고개는 숱한 일화와 전설을 남기고 있다. 시인도 이 고개를 넘으면서 시심을 달랬다. 1547년 남편 미암 유희춘이 양재역이란 벽서사건에 연루돼 제주도에 유배되었다가, 다시 함경도 종성에 안치되어 남편을 찾아가는 길에 시 한 수를 읊는다.

시인은 여자의 몸으로 지금 같으면 차를 타고 갈 수도 있으련만 걸어서 함경도 종성을 찾으면서 마천령 고개를 넘고 있다. 걷고 또 걸어서 마천령에 이르니 저 멀리 동해바다가 끊임없고 맑은 거울처럼 보였다는 시상을 만지작거린다. 선경의 그림치고는 거창하고 한반도의 정상에서 한 눈에 보이는 듯한 생각을 갖게 한다.

화자는 자신이 여기까지 오게 된 동기를 노정(露呈)하지 아니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녀자의 몸인데 무슨 일로 이렇게 만 리를 찾아 가고 있는 것인가를 묻고 삼종의 도리가 귀하기만 하고 일신은 이렇게 가벼운 거라는 자기를 버리는 시상이다. 남편의 훌륭한 그 정신을 받들자는 뜻이겠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걸어서 마천령 이르니 동해 바다 거울 같네, 아녀자가 만 리 왔구나 삼종지도 귀한 것을’이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한자와 어구

行行: 걷고 또 걷다. 遂至: 드디어 이르다. 摩天嶺: 마천령 고개, 東海: 동해. 無涯: 끝이 없다. 鏡面乎: 거울의 면과 같다. // 萬里: 만 리. 婦人: 부인의 몸으로. 何事到: 어찌하여 여기까지 이르렀나. 三從義重: 삼종지도의 의가 중하다. 一身輕: 일신은 이렇게 가볍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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