鼻(비) / 쌍명재 이인로

길고 긴 낙생의 읊조림을 지으며
윤준공에 읍하는 것 생각하게 하였는데
어느 때 영중 바탕을 자귀를 만날 수 있으리.
長作洛生詠 思揖隆準公
장작락생영 사읍륭준공
何時郢中質 一遇運斤風
하시영중질 일우운근풍


한 번 바람나게 놀린 자귀를 만나 볼 수 있으랴(鼻)로 제목을 붙여 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쌍명재(雙明齋) 이인로(李仁老:1152-1220)로 고려 후기의 문신이다. 31세 때인 1182년(명종 12) 금나라 하정사행에 서장관으로 수행했고, 다음해 귀국해 계양군 서기로 임명됐던 인물이다. 그 뒤 문극겸의 천거로 한림원에 보직돼 사소를 담당했다고 알려진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소리 길게 하여 낙생(洛生)의 읊조림 지어내고 / 융준공(隆準公)에게 정겹게 읍하는 것을 생각해 본다네 // 어느 때나 영중(郢中)을 바탕으로 삼아서 / 한 번 바람나게 놀린 자귀를 만나 볼 수 있으랴]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코’의 역할을 읊으며]로 번역된다. ‘낙생’(洛生)은 진나라 때의 낙하(落下) 서생(書生)들의 읊조림으로 ‘사안’(謝安)이란 자는 본시 코가 맹맹했다. 코가 메인 소리로 ‘낙생영’을 읊조리자 다른 사람들이 코를 가리고 모방했다 한다. ‘융준공’(隆準公)은 한고조가 코가 높았음을 가리키고, ‘영중’(郢中)에서 어느 장인(匠人)이 자귀질 잘함을 일컫는단다.

시인은 코에 얽힌 옛 고사를 잘 인용하면서 시상을 일으켰다. 오래도록 낙생(洛生)의 읊조림을 짓고, 융준공(隆準公)에게 읍하는 것을 생각했다고 했다. 한 사람이 코를 가리는 ‘낙생영’(洛生詠)을 읊조리자 다른 사람도 따라서 했음을 보인 시상이다.

화자는 어느 때나 영중(郢中)을 바탕으로, 한 번 바람나게 놀리는 자귀를 만나겠는가를 읊고 있다. 영중에 어느 장인이 자귀질을 잘해 사람의 코에다 작은 흙을 얹어 두고 자귀로 그것을 깎았는데, 자귀가 바람이 나서 코를 다 깎아내어도 상함이 없었다. 다른 사람은 다 대주지를 못했는데, 한 사람은 코를 대주고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 사람이 죽은 뒤에 장인이 “이제는 나의 바탕(질)이 없어졌다”하고 자귀질을 그만 두었단다.

※한자와 어구

長: 오래 동안. 作: 짓다. 하다. 洛生詠: ‘낙생영’이란 소리를 하다. 思揖: 읍하는 것을 생각하다. 隆準公: 융준공. 곧 한고조를 가리킴. // 何時: 어느 때나. 郢中: 영중 땅이름. 質: 바탕이 되다. 一遇: 한 번 만나다. 運斤風: 바람이 나게 놀리다. 바람이 나서 흙을 다 깎아도 코는 상함이 없었음을 가리킴.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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