存養(존양) / 회재 이언적
소소한 산비에 절로 꿈을 깨어 보니
창 밖에 꿩 우는 소리 나직이 들리고
인간의 생각 사라져 근원만 빛나누나.
山雨蕭蕭夢自醒 忽聞窓外野鷄聲
산우소소몽자성 홀문창외야계성
人間萬慮都消盡 只有靈源一點明
인간만려도소진 지유령원일점명

‘성리학자’였기 때문이었을까? 생각 무더기는 성리학 이상을 벗어나지 못한다. ‘존양’(存養)이란 양지에 목을 매는 섣부른 모습(?)도 본다. 하늘과 땅이란 철학적인 밑뿌리에 생각 주머니를 의지시키더니만 성리학에 그 이상을 접근하지 못하거나, 이기이원론이란 독실한 성리학을 생각하더니만 심리학적 이상을 뛰어 넘지 못한다. ‘소소한 산비가 내리니 절로 꿈은 깨고 보니, 창 밖에는 문득 꿩이 우는 소리가 멀리서 들린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오직 신령한 근원만이 한 점 밝게 빛나는구나’(存養)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1491-1553)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노모 봉양을 이유로 자주 사직을 하거나 외직으로 보내줄 것을 요청해 안동부사·경상도관찰사에 임명됐다. 조선시대의 가장 위대한 학자 중 한 사람으로 존경을 받고 있으며, 성리학의 큰 줄기인 영남학파의 창시자로 여겨진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소소한 산비가 내리니 절로 꿈이 깨고 보았더니 / 창 밖에는 문득 꿩이 우는 소리가 멀리서 들리는구나 /인간의 온갖 생각들이 모두 일시에 사라지고 / 오직 신령한 근원만이 한 점 밝게 빛나는구나’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내 몸의 양지를 보존하고 기르다’로 번역된다. 임거십오영(林居十五詠)에서 한 읊음을 가려 뽑았다. 부모를 공경하고 자신을 기르겠다는 마음으로부터 출발한 시인은 존양의 근원을 누구보다 분명하게 알고 지켰을 것으로 보이는 시상이다. 산비가 내리는 모습 속에서 꿩 한 마리 소리까지도 그냥 스치지는 못했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인은 이런 시상을 깊이 간직하는가 하면 산비 소복하게 내리는 장면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몸부림치는 모습으로 선경의 시상 주머니를 가만히 만지작거린다. 소소한 산비에 절로 꿈을 깨고 보니, 창 밖에는 문득 꿩 우는 소리 애처롭게 들린다고 했다. 산비가 내리고 꿩 우는 소리와는 상당한 상관관계가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보게 된다.

화자는 선경에 이은 후정은 보다 분명한 양상으로 그 정도를 캘 수 있어 보인다. 인간의 온갖 생각들이 모두 다 사라지고, 오직 신령한 근원만이 한 점 밝게 빛난다고 했다. 생물체의 한 사람의 잡다한 생각이 사라지고 나면, 신령한 근원만이 또렷한 영상으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시적 덩어리를 던진다.

※한자와 어구

山雨: 산 비. 蕭蕭: 소소하다. 夢自醒: 꿈이 저절로 깨다. 忽聞: 홀연히 듣다. 窓外: 창 밖에. 野鷄聲: 들 닭인 ‘꿩’의 소리를 듣다. 人間: 인간. 萬慮: 온갖 생각. 都消盡: 모두가 사라지다. 只有: 다만 ～이 있다. 靈源: 신령한 근원. 一點明: 한 점이 분명하다. 한 점이 밝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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