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寬(자관) / 운초 김부용

鏡裏癯容物外身 寒梅影子竹精神(경리구용물외신 한매영자죽정신)
逢人不道人間事 便是人間無事人(봉인부도인간사 편시인간무사인)
거울 속 야윈 얼굴 물외의 인간이여
매화의 그림자에 대쪽 같은 정신이라
인간사 말하지 않으니 탈 없는 사람이네.

시제인 자관(自寬)과 동의어로 사용할 수 있는 어휘가 있다면 자만(自慢)이나 자만(自滿)은 아닐까 생각한다. 의미는 조금씩 다르지만, 뜻한 바나 풍기는 의미는 비슷하다 하겠다. 그렇다고 자신이 하는 일만이 옳고 혹은 좋지 않는 행동을 해도 용서하려는 태도는 옳지 않다. 자신을 너그럽게 하고 자신을 되돌아보며 고치는 태도가 옳겠다. 거울 속 야윈 얼굴 물외의 인간으로 보이는데 / 매화 그림자에는 대쪽 같은 정신이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사람을 대해도 인간사를 차마 말하지 않으니(自寬)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운초(雲楚) 김부용(金芙蓉)으로 조선시대의 여류시인이다. 시를 잘 지어 유고집에 ‘운초집’을 남긴 시인이다. 이 ‘운초집’에 실려 있는 시는 규수문학의 정수로 꼽히고 있다. 시문집으로는 일제 때 김호신이 편찬했던 것으로 알려진 ‘운초당시고(일명 부용집)’이 있다고 전한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거울 속 야윈 얼굴 물외의 인간으로 보이는데 / 매화 그림자에는 대쪽 같은 정신이여라 // 사람을 대해도 인간사를 차마 말하지 않으니 / 이 곧 세상을 탈 없이 사는 사람이겠거늘’이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스스로 편안히 / 스스로 너그러움’으로 번역된다. 김부용은 평안남도 성천 출생으로 성천의 명기로서 가무와 시문에 뛰어났다. 김이양(金履陽)의 인정을 받아 종유하다가 기생생활을 청산하고 그의 소실이 된 뒤로 시와 거문고로 여생을 보냈다. 우아한 천품과 재예를 겸비하고 있어 당시 명사들과 교유, 수창(酬唱)했고, 특히 김이양과 동거하면서 그와 수창한 많은 시를 남겼다.

시인은 삶이 그렇듯이 작품의 면면을 살펴보면 살점을 오려내는 듯한 감정에 사로잡히는 수가 있을 만큼 섬뜩한 생각이 든다. 거울 속 야윈 얼굴 물외의 인간으로 보이는데, 매화 그림자에는 대쪽 같은 정신이여라고 했다, 대쪽 같은 자기의 마음을 그대로 잘 노정하고 있고, 삶의 잣대를 가만히 들여대 보인다.

화자는 시상은 긍정적인 생각이 꽉차있음이 시적인 그림 얼개에 차곡하게 들어있음을 볼 수 있다. 사람을 대해도 인간사를 차마 말하지 않고 살고 있으니, 이 곧 세상을 탈 없이 사는 사람이겠거늘 이라고 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상대의 인간사를 차마 말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이 점이 오로지 인간의 나아갈 바를 알게 한다.

※한자와 어구
鏡裏:거울 속. 癯容: 야윈 얼굴. 物外身: 물외의 인간. 寒梅: 차가운 매화. 影子: 그림자. 竹精神: 대쪽 같은 정신. // 逢人: 사람을 대하다. 사람을 만나다. 不道: 말하지 않다. ‘道’는 말할 도. 人間事: 인간사. 便是: 이것이 곧. 人間: 인간. 無事人: 사람이 탈이 없이.
<시조시인·문학평론가(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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