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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동북두강류 강상황운만수루(白山東北豆江流 江上黃雲滿戍樓)
단향준전경미주 부지천지유수주(但向樽前傾美酒 不知天地有愁州)
백두산 동북으로 두만강이 흐르고
강위에 누런 구름 수루에 가득한데
술동이 술 기울리니 근심할 줄 모르네.
이별이 짙어지면 미움으로 변한다고 한단다. 역설적인 표현이라고 하겠지만 선뜻 고개가 끄덕여 지지 않는다. 이렇게 보면 선뜻 맞다고 동의할 수는 없겠다. 이별은 더 큰 아픔을 가슴에 안길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떠나는 사람보다는 보내는 사람의 서운함 한 줌과 재회라는 미래지향적인 기쁨 두 줌은 미성숙이기 때문이다. ‘백두산은 동북으로 두만강이 흐르는데, 두만강에서 피어오른 누런 구름 수루에 가득하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천지에 근심스러운 고을 있는 줄 알지 못하네(送金鍾城元立)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동명(東溟) 정두경(鄭斗卿:1597-1673)으로 조선 후기의 문인, 학자다. 1629년(인조 7) 장원 급제했고, 벼슬은 부수찬·정언·교리 등을 거쳐, 예조참판에 이르렀던 인물이다. 시문에 뛰어났고 풍자를 잘해 효종 즉위 초에 풍시 27수를 써서 상을 탔던 것으로 알려진다. 저서에 ‘동명집’이 있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백두산은 동북으로 두만강이 흐르는데 / 두만강에서 피어오른 누런 구름 수루에 가득하다 // 다만 술동이 앞을 향해 좋은 술을 기울이니 / 천지에 근심스러운 고을 있는 줄을 알지 못하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김종성 원립을 보내면서’로 번역된다. 친지 김종성이라는 사람을 보내면서 마음이 착잡했을 것이다. 김종성에 대한 자료는 찾을 수가 없으나 시인이 그를 두고 백두산과 두만강을 운운했다면 상당히 가까운 사이임을 알 수 있고, 두만강을 사이에 둔 동복 삼성지방이나 함북 남양 어느 지방으로 생각된다. 이런 장소에서 헤어지는 마당에 술잔을 앞에 두고 긴 회포를 담아냈다.
시인은 우리의 국경지방의 산과 강을 거명하면서 누런 구름이 수루에 가득하다는 시적 주머니는 마냥 넉넉해 보인다. 백두산 동북으로 두만강은 흐르고 있는데, 두만강에서 피어오르는 누런 구름이 수루에 가득하다고 했다. 자욱한 구름이 가득한 가운데 앞뒤를 구분할 수 없을 만큼 구름에 가려 어두움이 깔리지만, 뜻에 맞은 두 사람 관계는 도탑기만 하다.
화자는 이별의 잔을 주고받는 술동이가 그 친근함을 잇게 해주는 역할을 했을 것이란 시낭은 도톰하다. 다만 술동이 앞을 향해 좋은 술을 기울이니, 천지에 근심스러운 고을이 있는 줄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국경지방이었기 때문에 이런 시어는 얽히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한자와 어구
元立: 아호인 듯. 白山: 백두산. 東北: 동북 쪽. 豆江流: 두만강이 흐른다. 江上: 강 위로. 黃雲: 누런 구름. 滿戍樓: 수루에 가득하다. // 但: 다만. 向樽前: 술동이 앞을 향하다. 傾美酒: 좋은 술을 기울이다. 不知: 알지 못하다. 天地: 천지에. 有愁州: 근심스러운 고을이 있다, 동시에 ‘종성鍾城’의 다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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