贈友人(증우인) - 외와 최림
白日有朝暮 靑山無古今(백일유조모 청산무고금)
一樽榮辱外 相對細論心(일준영욕외 상대세론심)
밝은 해도 아침과 저녁이 다르고
푸른 산은 고금이 변함이 없는데
우리네 마주 앉아서 잡담이나 나누세.

우인이나 정인을 만나면서 세상사는 이야기부터 구수한 잡담들이 오가면서 정은 더욱 도타워진다. 거기에 한 순배씩 막걸리 잔이 돌아가면 거나한 흥취는 하늘을 찌를 듯했을 것이다. 그 곁에 미모의 여인이 앉아서 가무를 더한다면 그 아니 제격이 아니겠는가. 가객의 임무는 율과 려가 조화를 이룬 한시창 한 마당이 흥을 더한다. ‘밝은 해도 아침과 저녁이 다르게 보이지만 / 푸른 산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한 동이 술이라면 영욕을 다 떨칠 수 있거늘(贈友人)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외와(畏窩) 최림(崔林:1779-1841)으로 조선 후기의 학자이다. 평생을 벼슬하지 않았으나 말년인 1840년(헌종 6) 학행으로 추천돼 선공감역에 제수됐던 인물이다. 운문산 공암에서 후학을 양성했으며, 사서오경은 물론 성력·병학·기수 등에 두루 능하였다. 시문집 ‘외와집’이 전한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밝은 해도 아침과 저녁이 다르게 보이지만 / 푸른 산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구나 // 우리 한 동이 술이라면 영욕을 다 떨칠 수 있거늘 / 마주 앉아 툭 터놓고 마음껏 잡담이나 나누세 그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친구에게 주다’로 번역된다. 하늘 높은 곳에서 밝게 빛나는 태양은 아침에는 동쪽에 있다가도 저녁이면 서쪽으로 진다. 돈과 권력 명예도 한 때는 빛나지만 결국 언젠가는 사라진다. 그러나 푸른 산과 같은 친구나 동지(同志)는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변하지 않고 항상 그 자리에서 그 모습을 지키고 있음이 우리들이 말하는 우정이다.

시인은 위와 같은 시통 주머니를 차고 이별을 고하는 마음이 넉넉해 보인다. 밝은 해도 아침과 저녁이 다르지만, 푸른 산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고 했다.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술잔을 나누며 마음을 터놓고 편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이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애써 좋은 말을 꾸미는 것(巧言令色)도 필요 없고, 허세를 부리며 과장(虛張聲勢)할 필요도 없다.

화자는 한 동이 술을 앞에 놓는 마음은 청순할 수밖에 없었겠다. 한 동이 술이면 영욕을 떨치거늘, 마주 앉아 툭 터놓고 잡담이나 나누자고 했다. 굳이 수준 높은 주제를 가지고 지식을 뽐내(高談峻論:고담준론)지 않아도 좋다. 마음에 있는 말을 나오는 대로 편하게 나눌 수 있는 친구와 만나 술잔을 기울이고 싶었으리.<시조시인·문학평론가(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한자와 어구

白日: 밝은 해. 有朝暮: 아침과 저녁이 있다. 곧 아침과 저녁이 다르다. 靑山: 청산. 無古今: 고금이 없다. // 一樽: 한 동이 술. 榮辱外: (한 동이 술로) 영욕을 떨치다. 相對: 상대방. 상대와 마주 앉는다 뜻임. 細論心: 자세한 이야기로 마음을 나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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