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요 며칠 동안 고장 난 오디오예요
탈출한 디스크 신경줄 긁는 소음에
잔잔한 봄의 스프링 어슬렁거리고만 있죠

보조기억 장치요? 주기억 장치예요
불안정한 환경을 감지한 하드 디스크
정지는 생활도미노를 가차없이 걷어찼죠

그렝이 공법으로 정밀하게 건축한
구조물 척추에 디스크가 핵이예요
여태껏 엄마 작품을 갉아 먹으며 왔네요
(시집 ‘제라하게’, 작가, 2024)



[시의 눈]

추위 누그러진 아침 기지갤 켭니다. ‘우두둑 찌리릿’ 몸 오디오가 알람을 울립니다. 비발디의 ‘봄’이면 좀 좋아요. 나 여태 침대 안이지요. ‘아이고매!’ 신경줄이 긁히자 밖의 스피커는 높은 시니피앙이 됩니다. 스프링처럼 콩콩 튈 봄에 ‘어슬렁거리’니 야단이군요. 오래전 작고하신 어머닌 숫제 이 오디오를 차고 다니셨지요. 블루투스처럼 말예요. 그 곡을 ‘갉아먹’듯 나 표절하고 있네요. ‘아빠 잘 잤어요?’ 딸애가 묻습니다. 마침 앞산에선 숫뻐꾸기 부름에 ‘꾸르륵’ 암컷 화답이 이어집니다. 고장은 났지만 응답은 우렁차야겠다고 판단합니다. 액센트를 척 붙이지요. ‘잘 다녀와라!’ 딸애는 내 기함에 양양히 출근합니다. 대문소리, 이어 난 맘놓고 볼륨을 키웁니다. ‘아이고 허리야!’, ‘허, 누가 귀라도 먹었나요? 앞 병원까지 들리겠네요’ 아내 핀잔이 더불 터치되자 추임새라도 받듯 ‘아이고 죽겄네 아이고 죽어!’ 5클릭이 9로 뛰어오릅니다. 김양희 시인은 제주 한림에서 나, 2016년 ‘시조시학’으로 등단했습니다. 시조집으로 ‘넌 무작정 온다’(2020)가 있습니다. 그는 여문 상상력으로 튀는 이미지를 포착해 구부러진 사물 내부까지 점묘하는 시인입니다. <노창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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