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나무에 걸쳤던 새그물을 걷는다
실선도 장해인지 환하게 트인 시야
사람과 까치 사이에 휴전이 성립된다
겨누었던 눈총을 밭둑에 던져놓고
얽혔던 애증을 가지런히 푸는 사이
적의가 눈처럼 녹아 아지랑이 피는 날

나름의 이유 있어 척지고 살았지만
한 하늘 나눠 갖는 공평한 목숨이라
꽃자리 다시 엮으며 마음을 합치는데
겨우내 속살 오른 나무의 마디마다
얼었던 경혈 녹아 맥박이 살아나고
사라진 접경을 지나는 바람조차 따습다
(시조집 ‘밥이 돌이 될 때’, 책만드는집, 2023)

[시의 눈]

나주의 박씨는 천평 쯤의 배나무밭을 가꿉니다. 매년 흐드러지는 배꽃이 지고 보송한 열매가 날 때부터 그는 새그물을 칩니다. 까치나 비둘기를 막아낼 작업을 하는 게지요. 한데, 올봄엔 그들과 얽혔던 애증을 풀까 생각합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새와 자기는 척을 졌지만 실은 하늘 아래서는 공평하다 여기기 때문이지요. 그가 이맘쯤 배꽃 환한 날을 돌아봅니다. 폭설을 이긴 봄이 경혈에 온기를 넣습니다. 겨우내 앓고난 그는 깨달은 바 있지요. 그래 잠시 고개 들고 새들을 향해 무딘 장갑손으로 힘들게 손짓합니다. 둔덕의 나무엔 그물을 씌우지 않을 작정인 이 손짓을 저 새들이 하마 알까 몰라요. 유현주 시인은 충남 서산에서 나, 2007년 4월 중앙시조백일장 장원, 2009년 제1회 천강문학상 입상, 2010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로 등단했습니다. 그는 가족사의 곡진한 고백록을 쓰듯 선대부터 자신에 이르는 그 연대기를 서사화하는 시인입니다. <노창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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