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서 온 그녀를 사과댁이라 부르네
센스가 만점인 정자리 어르신들
건너댁 뒷골댁 모두 착한 사마리아인

청주서 온 나는 무심천댁으로 불렸으면
물 흐르는 소리로 나중까지 흐르고 흘러
아이고 무심천댁이 그만,
나 물결에
휩쓸리겠네
(시집 ‘세상의 두근거림은 다 어디로 갔을까’, 시인동네, 2024)

[시의 눈]

우리 동네는 청수원(淸水院)이랍니다. 먼 친척인 누나는 화순으로 시집가 청수댁으로 불리다가 그 집에 물 길러오는 아낙들로부터 그만 우물댁으로 불렸다 해요. 한 이웃 마을의 중매쟁이를 따라 아버지는 문평 장에서 어머니를 만났지요. 함평 토박이인 아버진 함평 양반을 버리고 문평 양반이란 택호를 얻었습니다. 수인사가 끝나고 오일장 귀퉁이의 팥죽가게를 기웃거렸댔지요. 하지만 고픈 배를 움켜쥐고 더 배고픈 어머니를 그냥 보내고 왔다고 해요. 사실 어머니가 사시던 곳은 들판이 넓었습니다. 그래 흉년 때도 죽은 먹고 살았다네요. 우리보단 더 나은 동네였거든요. ‘문평떡, 문평아짐, 문평동상’ 이리 부르는 아주머니들이 우리집을 노상 들고났지요. 어머니 동네는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가 들판까지 퍼진다는 문평(文平), 하지만 시집 와 고생이 말이 아니었지요. ‘아이고 문평댁이란 택호는 그만 불러요. 알량한 글만 읽다 고파지는 배를 더 움키기도 힘드요!’ 이 시와 더불어 어머니의 속맘을 헤아립니다. 이제야 옛 시절을 떠올린 소갈머리 없는 난 택호는커녕 그 고향마저도 잊었습니다. 손영희 시인은 충북 청주에서 출생해 2003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고, 시조집 ‘불룩한 의자’(2009), ‘소금 박물관’(2015)을 펴냈습니다. 그는 쓸모와 효용을 벗어난 주변화된 존재들에 주목하여 거기 스며든 희미한 두근거림을 찾아가는 시인입니다.<노창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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