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교향곡>

고막원천은 풍광이 좋은 곳이다. 그날 새벽 고막원천 둑 위에서 산책할 때까지만 해도 날씨가 맑아서 아침노을이 타오를 무렵, 물고기들이 붉게 물든 수면 위에 수많은 크고 작은 둥근 물결을 만들면서 새벽 먹이 활동을 시작했고 이 기회를 놓칠세라 물새들이 갈대숲에 숨어 있다가 떼로 몰려다니면서 물고기를 사냥했다.

내가 하필 고막원천 옆에 양만장(민물장어 양식장)을 짓게 된 이유는 이처럼 경치가 좋아서가 아니다. 이곳은 어디를 뚫어도 지하수가 펑펑 쏟아지고 고압전기를 쉽게 끌어올 수 있는 등 양만장 입지 조건이 좋은 곳이다. 하지만 이 또한 이유가 아니다. 사실 나는 일본에서 맛보기 전까지는 장어요리가 비싸다는 것 외에는 민물장어에 대해서 아는 게 없었다. 외항선을 타고 일본에 입항했을 때 우연히 우나기 벤또를 샀다. 민물장어 덧밥 도시락이다. 정말 혓바닥이 따라 넘어갈 정도로 맛있었다. 그때의 강한 인상이 나중에 양만 사업에 뛰어들 때 큰 영향을 끼쳤다. 이후 나는 하선하여 육상에서 먹고 살 일을 찾던 중 친지의 소개로 양만업을 하던 김 사장을 소개받았고 김 사장의 권유로 그의 양만장 바로 옆에 양만장을 짓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나는 함평군 나산면 고막원천 옆에서 아내와 여섯 살짜리 아들 그리고 종업원 철수와 함께 본격적으로 양만장을 일구기 시작했다. 당시는 초창기라 빚이 많았고 육체적으로 금전적으로 매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수전실을 설명해야겠다. 수전실受電室은 양만장에서 제일 중요한 곳으로 건평 40평, 아파트 두 개 층 높이, 블록 조, 슬레이트집이다. 한전으로부터 전기를 받아 산소 공급용 수차에 전기를 공급하는 곳이다. 따라서 각종 전기장치와 정전 시 발전하는 비상 발전기가 있다. 이외에 수조 물을 데워주기 위한 대형 벙커 C 보일러, 이에 따른 대형 벙커 C 탱크, 경유 탱크 등이 있다.

내 나이 서른여섯 살 때의 일이니까 지금으로부터 35년 전 8월 말 장마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아내는 직장에 출근하기 위해서 아침밥을 먹고 바로 버스 타고 함평읍으로 떠났고 아들은 혼자 방에서 놀고 있었다. 8시경 종업원 철수와 함께 통상 작업을 시작했다. 양식 수조 물을 일부 환수해 주면서 동시에 수전실 안에서 고장 난 수차를 수리하고 있었다. 9시 무렵부터 이슬비가 내리더니 조금 지나자 가랑비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돌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10시 무렵부터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TV에서 비만 온다고 했지 기상 특보는 없었다. 내리다 말겠지 생각했는데 급기야 양동이로 퍼붓듯이 두어 시간 계속 비가 쏟아졌다.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제방 위로 올라가 봤다. 맙소사, 강물이 벌써 양만장 지붕보다 더 높이 무섭게 흐르고 있었다. 이는 양만장 쪽 빗물이 천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차오른다는 뜻이다. 겁이 덜컹 났다. 둘러보니 벌써 가까운 곳까지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조금 지나자 정전되었다. 비상 발전기를 가동했다. 다행히 발전기는 정상으로 가동되었다. 안도감은 잠시,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만약 비상 발전기가 있는 수전실로 물이 차오르면 어떻게 되지? 모든 것이 끝장이다. 빗물이 마당으로 조금씩 차오르기 시작했다(수전실은 마당보다 약간 지대가 높다). 차츰 수전실 주위로 물이 차올랐다. 눈앞이 점점 캄캄해졌다. 나는 워낙 창졸간에 벌어진 일이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통장 귀금속 등기서류 등이 먼저 떠올랐다. 절망적인 심정으로 관리사에 갔는데 깜박 잊고 있던 아들이 혼자 겁에 질려서 울고 있었다. 얼른 물건을 챙기고 아들을 업고 수전실로 왔다. 물은 수전실 문턱 가까이 차오르고 있다. 쪼그려 앉아서 담배 한 대 피워 물었다. 담배를 끼고 있는 손가락이 달달 떨렸다. 눈앞이 깜깜했다. 침착해지려고 노력했다. 어떻게 하든지 수전실로 물이 들어오지 않게 막아야 한다. 그러자면 출입구를 무얼로 막지? 순간 생각은 사라지고 머릿속이 텅 빈 느낌이었다. 그러던 중 본능적으로 쓸데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철수에게 명령했다.

“양수기 2대 가져다가 저기 환기창 위에다 설치해라”

철수는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물이 계속 들어오는데 뭐 하러 설치합니까? 포기하고 대피합시다요”

철수는 불평하면서 양수기 두 대를 환기창 위에 설치했다. 물이 수전실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또 담배 한 대 피워 물고 수전실 출입구를 어떻게 막느냐를 고민했다. 빨리 판단해야 한다. 지금 순간순간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면사무소 직원들이 와서 빨리 대피하라고 등을 떠밀었다. 둘러보니 아들은 발등까지 물에 잠긴 채 자지러지게 울고 서 있었다. 잘못되면 둘 다 죽는다. 포기하고 아들 데리고 떠날까? 막을 방법을 과연 찾을 수 있을까? 무엇으로 막아야 하나 텅 빈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 다시 담뱃불을 붙이려는 순간 번뜩 머리에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아, 어쩌면 그것으로 막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철수에게 명령했다.

“안방 장롱에서 이불이고 옷이고 뭐고 다 가져와라 빨리”

“도망갑시다요”

“이놈아, 시간 없다 빨리 가져와 빨리”

효과가 있고 없고를 따질 시간이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엔 없다. 철수는 이불 등을 가져 날렸다. 이불을 길게 문턱에 깔아보았다. 이불이 약간 짧았다. 이불과 문틀 사이에 베개며 옷가지 등으로 메꿨다. 아 놀랍게도 이불이 효과가 좋았다. 이불이 물을 먹으니까 그 무게로 인해서 밀착되어 방수가 잘 되었다. 그래도 약간의 물은 새어 들어 왔다. 사육 수조 높이가 1m 정도 높이므로 이불 등으로 약 1m 정도 벽을 쌓았다. 비가 계속 와서 이불을 넘어버리면 사육 수조도 넘친다. 나는 철수에게 배수펌프 가동을 명령했다. 다행히 펌프가 잘 가동되어 물을 퍼내기 시작했다.

휴 한숨을 내쉬고 있었는데 그제야 아들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들은 발목까지 차오른 물속에서 새파랗게 질려 엉엉 울고 있었다. 만약 제방이 터져서 갑자기 물이 수전실로 밀려들면 모두 죽는다. 아들을 대피시켜야만 했다. 긴박한 상황을 놓아두고 현장을 비워야 하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들을 업고 허벅지까지 차오른 물 가르며 10분쯤 떨어진 마을로 날아가듯 달려갔다. 동네는 지대가 약간 높아 아직 물이 차오르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이 장대비 속에서 띄엄띄엄 부부 혹은 혼자 이불 보퉁이를 머리에 이고 짊어지고 물건은 손에 들고 초등학교로 피난 가는 중이었다. 빨리 누구에게든지 아들을 맡겨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지만 실은 난감했다. 나는 이곳에 이사 온 지 겨우 일 년 남짓밖에 되지 않아서 주민들을 잘 알지 못한다. 발을 동동 구르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사정해도 본체만체했다. 사실 이해할만한 일이다. 자기 운명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잘 알지도 못한 사람의 아이를 맡을 수는 없겠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다시 그대로 수전실로 되돌아가야 하나 망설이던 중에 정말 고맙게도 등짐을 하고 가던 농약방 아저씨가 아들을 받아줬다. 얼른 업고 있던 아들을 다시 걸리고 아들 손을 아저씨에게 넘겼다. 아들을 맡기고 정신없이 뛰어오다가 문득 뒤를 한번 돌아봤다.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기 때문이다. 아들은 계속 고개를 뒤로 젖히고 애비를 쳐다보면서 아장아장 걷고 있었던 중이었다.

돌아와 보니 철수가 열심히 물 새는 것을 막고 있었다.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으나 비는 계속 쏟아지고 수위는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다. 수전실 입구에서 이불 사이로 들어오는 물을 막느라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맞은편 고막원천 제방 위에서 메리야스만 입고 봉두난발을 한 귀신 하나가 장대비 속에서 폴짝폴짝 뛰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옆 양만장 김 사장이었다. 정신이 나간 것처럼 보였다. 그는 자기 양만장을 포기하고 온 것이 틀림없다. 아, 억장이 무너졌다.

결국 수위가 이불 장벽을 넘칠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 정도면 곧 양식 수조도 넘친다. 벽돌로 이불이 무너지지 않도록 괬다. 수위가 높아지면서 수전실 안으로 점점 물이 많이 들어왔다. 절체절명의 위기, 거의 발전기 바로 밑까지 물이 차올라 몇 밀리만 더 차면 발전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배수펌프가 감당하지 못했으므로 철수와 함께 양동이로 물을 퍼냈다. 젖먹이 힘까지 다해 퍼냈다. 그런데 내가 잠깐 다른 일 하는 사이에 믿었던 철수마저 도망쳐 버렸다. 절망이다. 사방이 물바다, 수전실만 물이 약간 덜 차 있는 모양이다. 모든 게 아슬아슬했다. 만감이 교차했다.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다. 운명이다. 여기서 눈곱만하게 상황이 더 악화한다면 양식 중인 민물장어 당시 시가 수억 원어치가 죽거나 도망간다. 십 수년간 가족과 떨어져 바다 위에서 힘들게 모은 돈과 사돈네 팔촌까지 빚낸 거금이 물거품이 된다. 살려주세요! 신이 있다면 제발 나 좀 살려주세요. 목이 터지게 울부짖었다.

이런 절망감 속에서 계속 혼자 물을 퍼내는 중 눈이 번쩍 뜨였다. 빗줄기가 조금씩 가늘어져 가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당장 수위가 낮아지지는 않았다. 아슬아슬한 상태는 계속되었다. 피가 말랐다. 만滿 수위 상태가 계속되다가 너덧 시간이 지난 후에야 수위가 아주 아주 조금씩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느님 부처님 만세 감사합니다. 차오를 때는 급하게 차올랐지만 빠질 때는 지독히 천천히 빠졌다. 그러는 사이 날이 어두워졌다. 칠흑 같은 밤, 고요 속에 비상 발전기 소리만 힘겹게 들려왔다. 약해졌지만 비는 계속 내렸다.

그러던 중 밤 12시 무렵 검은 그림자 하나가 대문을 열고 나타났다. 직장에 출근했던 아내가 이제야 혼비백산하여 달려온 것이다. 함평읍과 나산간 도로가 홍수로 유실되어 그 길로 오지 못하고 영광 쪽으로 역逆으로 돌아왔는데 한때 영광 쪽 교통마저 수해로 끊긴데다 이재민들이 몰리는 바람에 버스도 택시도 타기 힘들어서 이렇게 늦게 온 것이다. 맘고생 오죽했으랴. 새벽녘이 되어서야 수전실 물이 모두 빠졌다. 물이 빠졌어도 주위는 온통 뻘이라 앉을 수도 누울 수도 없었다. 30시간 이상을 서서만 있었고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다. 더 이상 굴신 할 힘조차 없었다. 다음 날 오전 10시경에 전기가 들어왔다. 비상 발전기를 껐다. 25시간 동안 탈 없이 돌아준 발전기를 한번 쓰다듬어 주고는 바로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수해를 당한 이후 김 사장은 몇 년 더 양만장을 운영하긴 했으나 재기하지 못하고 결국 양만장을 비워둔 채 어디론가 떠났고 수년 후에 60살을 채 넘기지도 못하고 죽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똑같은 조건에서 수해를 당했으나 나는 살아남았고 김 사장은 파산했다.

내가 왜 살아남았을까? 눈앞은 물론 머릿속까지 깜깜해져서 보고 있어도 보이지 않았고 무얼 생각하려 해도 생각이 사라진 상황에서 이불이 왜 떠올랐을까, 그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왜 비가 잦아졌을까, 비상 발전기, 수전실에 설치한 배수펌프 두 대, 수조 위 많은 수차와 기계들 이들은 가끔 고장 나기도 하는데 왜 그때 무사히 운전해주었을까, 자기 운명도 가늠할 수 없었던 농약방 아저씨가 아들을 받아주지 않았다면 아들과 함께 과연 버텨 낼 수 있었을까 이런 믿기지 않는 일들이 신을 믿지 않는 나에게 일어났다. 참말로 알 수 없는 일. 진인사대천명이니 운이 좋았다느니 하는 설명으로는 부족할 것 같고 좀 더 큰 힘 아마도 운명 같은 것이 나를 도와주었지 않았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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