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면을 가득 메운 이름과 그림 속에서 우리는 시공간적으로 서로 연결되고 얽힌 역사적 실체들을 마주한다. 대상과 공명하며 그 기운을 그리고 혼을 달래는 전시는 단순히 예술작품을 거는 양식에 머물지 않으며, 제의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광주항일운동, 주한미군기지, 위안부, 5·18민주화운동 등 근현대의 상처입은 역사를 주제로 마련된 전시가 펼쳐진다.

이진경 작가 개인전 ‘다시 살으라 - 오는 봄’이 오는 30일까지 오월미술관(동구 문화전당로 29-1 2층)과 무등공부방(서구 화정동 126-13)에서 열리고 있다.

이진경은 그동안 환경·생태·지역·근대사·문화·정치 등 삶을 둘러싼 다양한 가치와 의미를 예술언어로 구현해왔다.

이번 전시 ‘다시 살으라-오는 봄’은 지난 6월 방문한 광주제일고 독립운동 기념탑이 시작점이다. 광주학생항일운동에 참여한 소년들 속 찾은 외조부의 이름은 이진경에게 ‘광주’의 의미를 불러내고 작업으로 나아가게 했다.

작가는 2021년 이응노의 집에서 펼쳐진 ‘먼먼산-헤치고 흐르고’, 2022년 ‘먼먼산-눈은 나리고’를 통해 동학과 4·3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수레바퀴 속 희생되거나 흔들림 없이 저항한 이들을 소환하는 작업을 진행한 바 있다. 올해 두 번의 ‘다시 살으라’ 전시 역시 그 맥락을 이어 받는다.

광주 전시에 앞서 춘천에서 열린 ‘다시 살으라-빈 들 속에서’를 통해 작가는 레고랜드 성탑 속 고요히 묻혀있는 고대국가의 유적들에 주목했다. 지난 10월 한 달간 ‘양공주’, ‘혼혈아’, ‘6·25’ 등 작품을 통해 일본제국주의에서 미군 주둔으로 이어지는 연속성 안에서 훼손되고 짓밟힌 우리역사의 단면을 재해석하고 상처 입은 이들을 치유하는 제사를 지냈다.

광주 ‘오월미술관’과 ‘무등공부방’ 두 군데서 진행되는 ‘다시 살으라-오는 봄’은 춘천 전시 작품을 포함하면서도 보다 확대된 규모로 펼쳐진다. 광주항일학생운동에서부터 5·18민주화운동이라는 저항의 근현대사 속 ‘오는 봄’을 기다리며 나아간 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특히 붉은 종이에 써내려간 5·18 전남도청 희생자들의 이름, 광주항일학생운동으로 촉발된 전국 항일학생운동 학교 명단, 일본제국주의 위안부 동원 국가 등 수도 없는 이름들을 적은 작업들은 그동안 수집하고 연구한 자료를 토대로 역사의 빈칸을 채우고 그 존재들을 하나하나 불러내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이진경은 작가노트에서 현재를 ‘아직 오지 않은 봄을 기다리는’ 시대로 규정하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아직도 이 땅은 불구덩이다. 묻을 수 없고 잊을 수 없는데, 어찌 살아야 하는가? 오는 봄을 기다리며 숨을 다시 고르고 눈을 바로 뜬다.”

오월미술관 관계자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죽어간 이들에 대한 이진경의 작업은 바로 오늘, 우리가 바라보고 살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준다”며 “이를 다시 세우고 보듬어 안는 작가의 생동하는 기운을 광주 시민 모두가 함께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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