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모, 가정부, 파출부, 아줌마, 이모, 도우미, 가사서비스직, 가사근로자, 가사노동자, 가사관리사…. 시대를 관통하며 많은 이름으로 불려온 직업이 있다.

다른 가정의 가사일을 대행해 주는, 이른바 ‘가사노동자’다. 광주의 경우 현재 가사노동자로 종사하는 95%가량이 여성이다.

여전히 여성이 절대적으로 대다수인 직업군이다. 이들 삶의 궤적은 어떠할까.

광주여성가족재단이 광주의 여성 가사노동자 5인의 구술채록을 담은 ‘우리는 마이다스 손이라 그래’를 발간했다. 이번 구술채록집은 ‘광주시민이 기록하는 광주여성의 역사’라는 취지로 재단이 추진해온 광주여성사 발굴 및 아카이빙 사업의 세 번째 결과물이다.

과거 ‘식모’는 일제강점기부터 1950년대까지 가장 많은 여성이 택했던 일이다. 집안의 입 하나를 덜기 위해 남의 집으로 들어가야 했던 어린 여성들의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했다. 이후 가사노동은 가정부, 파출부 등의 이름을 거쳐 오늘날 가사노동자, 가사관리사라는 명칭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로 남성 실직이 크게 늘자 주부들이 사회로 나왔고, 동시에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며 가사노동 수요가 급증했다. 이후 ‘가사노동자’라는 용어는 2011년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처음 쓰이며 상용화됐다.

박연옥

정혜선

박정숙

주향복

전희숙

이번 구술채록에 참여한 여성 가사노동자들 역시 최전방의 일꾼이지만 ‘그림자 노동자’로 존재해 온 굴곡진 삶의 여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박연옥(1951년생), 정혜선(1954년생), 박정숙(1958년생), 주향복(1964년생), 전희숙(1967년생) 5명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이 가사노동 현장에 뛰어든 사연은 제각기 다르면서도 비슷한 양상의 고단함을 보인다. 집안 경제에 일조하기 위한 딸로서, 가장으로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의 사연을 비롯해 자영업·보험·공장·일반 회사 등 다양한 직종을 거친 뒤 가사노동 현장에 최종적으로 뛰어든 상황도 그렇다. 삶의 많은 이면과 사연을 거친 뒤 택한 직업이 그들에게 가사노동인 것이다. 구술자들의 삶 속 ‘가사노동자’라는 단어에는 가족을 위해 희생을 무릅쓴 숭고함이 깃들어 있다.

특히 구술채록 작업이 진행되면서 새롭게 발견된 지점은 구술자들의 직업에 대한 만족도다. 고단한 경로와 과정을 거쳐 정착하게 된 가사노동자로서의 삶은 그들에게 오롯한 희망이고 기쁨이 됐다. 내적인 만족도가 매우 높고, 건강만 허락된다면 앞으로도 계속 이어가고 싶은 직업이다. 다른 이들에게도 자신 있게 추천하고 싶은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또 이들은 훨씬 더 주체적이고 미래지향적이다. “내 것이든 네 것이든 나는 그저 ‘내 것 한다’는 마음으로 한다”는 박연옥님, “일을 딱 끝내고 나서 뒤돌아보면 너무너무 뿌듯하다. 내가 우리를 ‘마이다스의 손’이라 한다”는 전희숙님의 구술에서도 그 자부심과 진정성은 여실히 느껴진다.

이들에 대한 채록작업은 광주시민을 대상으로 양성된 재단 구술채록단 중 한영숙·조경미·김강현·장상은·이정선 5명이 맡았다. 대학·출판사·방송사·프리랜서·주부 등 다분야에서 활동 중인 이들 채록단은 올해 내내 가사노동자 구술작업에 심혈을 기울여 책이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한 또 다른 주역이다. 재단은 구술채록집 발간을 기념해 오는 20일 오후 2시 재단 소공연장에서 출판기념 집담회를 진행한다. 이날 집담회에서는 구술자·채록자들이 나서 가사노동자의 삶과 채록 과정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줄 예정이다. 참여 시민에게는 선착순으로 구술채록집과 소정의 선물을 제공한다.

김경례 재단 대표이사는 “이 책은 ‘가사노동’이라는 분야를 자신의 일터이자 삶터로 삼아온 여성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은 귀한 기록집이다”며 “이들이야말로 자본주의를 지탱해 온 최전방의 일꾼이자 시대의 민초이고 가장”이라고 밝혔다./최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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