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ill life_적요’

‘떠도는 어린 넋들을 위하여’

억울하게 죽은 넋에 대한 애도와 구원, 동시대 사회의 현실을 기록하는 풍속화, 조각난 풍경과 정물, 그리고 불화의 깊은 색조를 풀어낸 색면 추상. 시대의 굵직한 서사에서부터 자연과 인간의 내밀한 이야기까지. 그림으로 짙은 감동을 안겨주는 임남진 작가의 기획초대전이 마련됐다.

오는 14일까지 강진아트홀에서 열리는 ‘Still Life 연서戀書_임남진의 위로, 슬픔을 조각내기’ 전시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청년기 작품부터 현재까지 그 깊은 서사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자리다. 시기별 주요작을 비롯해 최근 몰입 중인 ‘Still Life’ 시리즈 등을 소개한다.

한 작가의 작품이지만 1990년대에서부터 2000년대, 현재까지 자연스럽게 변화해온 한국미술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는 전시이기도 하다.

청년기 작가의 작품세계를 줄곧 상징해 온 것은 불화 감로탱화 형식의 풍속도였다. 그는 광주에서 나고자라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시간을 몸소 겪으며 민중미술, 현실참여미술운동 등에 함께했다. 시대의 굵직한 서사들은 그의 그림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1993년 처음 불화를 만난 뒤 그린 ‘감로탱화’는 현실을 기록하는 큰 줄기가 됐다. ‘떠도는 넋을 위하여’(2000), ‘장막도’(2014) 등 작품은 민주화운동, 세월호 사건 등으로 억울하게 죽은 넋과 희생당한 수많은 영혼, 살아남은 자들을 위로한다.

이러한 그림들은 이후 작가가 살아가는 현실의 일상을 반영한 풍속도로 이어졌다. 2007년 첫 개인전에서 선보인 ‘황연’, ‘풍속도’, ‘Bella Luna’ 등은 다양한 방식으로 시대와 자아를 투영한 결과물이다.

작가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다 준 것은 2018년 ‘Still Life_BLUE’ 전시다. 2014년 광주시립미술관 북경레지던시 이후 줄곧 이어졌던 작품에 대한 고민이 반영된 작품이다. 추상화로 변화되는 징후를 강하게 보여준다. 작가는 불화를 빌어 시대의 서사를 강력하게 이야기하던 것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자신의 내면으로 천착, 더 깊고 넓어진 시선으로 인간과 자연의 근원적 서사에 몰입했다.

‘적요(寂寥)’, ‘연서(戀書)’ 등 ‘Still Life’ 시리즈는 함축된 세계로, 깊고 넓게 확장된 시선 속 삶의 근원적 서사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달빛이 은은하게 번지고 있는 하늘, 하늘을 분할하는 지붕과 벽채, 기둥과 같은 건축적 요소, 종이를 접은 쪽지 형상 등이 등장한다. 화면은 더욱 추상화됐고 단순한 색면의 조화를 이룬다.

작가는 “불화 형식을 차용해 주변 삶 속에서 일어나는 군상들을 그리며 인간세계의 부조리한 삶과 인간의 본질을 다뤘다. ‘그 시절’ 눈으로 바라본 세상과 인간, 삶을 묻고, 알고 싶었다”며 “지난했던 나의 흔적들이 포착된 사물의 현상과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푸른 힘’으로 비춰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박현화 무안군오승우미술관장은 “그의 회화세계를 관통하는 것은 타인이 겪는 상실의 고통과 이를 지켜보는 자아 내면의 깊은 슬픔이라 할 수 있다”며 “그의 회화는 슬픔이 슬픔을 향해 통로를 만들면서 형성되는 새로운 관계에 존재한다. 불화세계와 추상적인 색조 사이를 잇는 다리는 세상의 모든 상실의 고통과 슬픔에 대한 위로”라고 평했다.

/최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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