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산책-흔적’

짐노페디(Gymnopedies)는 에릭 사티(Erik Satie)가 1888년에 완성한 3곡으로 구성된 기악곡이다. 언제부턴가 비 오는 날이면 짐노페디를 허밍한다. 사실 이 음악은 굉장히 단조롭다. 전혀 화려하지도 않으며 클라이맥스도 없고 드라마틱하지도 않다. 하지만 단음의 애조 띤 멜로디와 일정한 리듬의 반복이 단순한 듯하나 그것을 지배하는 ‘불협화음’이 나의 마음을 뒤흔든다.

마음 속에 흐르는 선율은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를 바꾼다.

새벽에 듣는 짐노페디는 우울한 꿈처럼 고요하고, 오후 4시에 듣는 짐노페디는 슬프지만 명상적이다. 또 저녁에 듣는 짐노페디는 어딘가 느슨한 듯하면서 질긴 시선으로 세상과 자신에 관한 감정을 음악으로 변환시켜 준다. 나의 회화로 말하자면 터치는 ‘감정의 촉수’며 색은 ‘마음의 혼불’로, 아슬아슬한 감정의 줄타기이다. 기분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르게 들리는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선율로 나의 회화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영향을 준 이 선율을 어떻게 색과 터치로 심플하고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일종의 제스처적인 작업이라 할 수 있는데, 신체 드로잉에 가까운 지휘 퍼포먼스를 연상해 본다.

제스처는 ‘말 이외에 할 수 있는 제2의 언어’이자 몸짓 언어이다. 화가의 붓 터치는 명장의 지휘봉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작업하면서 듣는 음악이 나의 그림과 어떠한 관계 맺음으로 표출되는지 시각화한 것이다.

꽃을 그리기는 쉬워도 향기를 그리는 것은 어렵다. 음악은 듣기는 쉬워도 그 감정을 해석해 시각적으로 표현하기는 더 어렵다. 보이는 것은 가시적이고 직접적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거기 있는 것의 ‘핵심’을 이룬다. 지울 수 없는 것을 지움으로써 지워지지 않는 것을 드러내고 있는 ‘마음산책’을 통해 색과 터치, 선율의 상관관계를 표현해본다. 허밍의 여운이 붓 터치가 될 때, 짐노페디는 시·청각에 대한 다층적인 영감을 발화한다. <대인동에서 화가 강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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