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22(일)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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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살면서 몸으로 느끼는 사자성어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이다. 우공이 산을 옮기듯이 천천히 꾸준하게 하면 된다. 눈뜨고 일어나선 명상과 스트레칭으로 시작한다. 느긋하게 차 한잔을 마시며 설레이는 마음으로 하루를 연다. 그리고 널려있는 집안 일을 한다. 혹여라도 밖에 나가면 사람을 만나는 일이 즐겁다. 자동차에 연료와 밥값만 있으면 된다. 커피 한 잔을 할 수 있으면 좋고 숙박비 정도의 돈이 있으면 장거리를 갈 수 있으니 더 좋다. 청년시절이나 장년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물론 그 시절, 설레임과 꿈이 있었다. 그러나 고뇌에 가득 찼더랬다. 지금 맞이한 노년의 이 자유로움을 난 옹골차게 누리고 싶다.
버킷리스트도 ‘오토바이 라이딩’을 마지막으로 모두 마무리했다. 사실, 즐거운 노년은 쉽지 않다. 퇴직 후 시골로 와서 새로운 환경에서의 매너리즘으로 공황장애를 겪었다. 그리고 나름대로 시행착오를 겪으며 적잖이 배우고 깨우쳤다. 노년은 외로움으로 시작된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있을 때 더 외로울 수도 있다. 어쩌면 외로운 게 아니라 심심한 거다. 외로움 타령을 하기엔 시간이 아깝다. 외롭다고 느껴지면 바로 일어나 길을 나선다. 자연 속으로 들어가면 지천으로 널린 작은 풀꽃을 마주한다. 거기서 아름다움을 보게 되며 내 자신을 되돌아본다.
점차 인간관계가 정리돼 갈등이 줄어들었다. 경제적 쓰임새도 줄어 적은 돈으로도 생활이 가능해졌다. 새로운 배움보다 배운 것을 반복하고 익히기에 바쁘다. 모임도 정리돼 생활이 단순해진다. 퇴직 후 시골로 들어와 산 지 벌써 10년째다. 도시에 살았더라면 하지 않았을 경험을 두루 했다. 텃밭을 일구고 수확하면서 자연을 배운 것이다. 닭을 방목해서 기른 7년 동안 닭모이를 찾아오는 쥐, 산 짐승, 그리고 하늘에서 맴도는 매에게서 닭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 지루하게 계속됐다. 끝내 닭은 매와 산짐승에게 먹혀 사라졌다. 마당에 낸 물길에 개구리가 찾아와 울어댔다. 처음에 그 노랫소리가 반가웠지만 점차 많아지다 보니 개구리 소리가 소음이 됐다. 개구리 역시 물길과 개구리를 찾아 마당에 서식하게 된 뱀의 먹이가 되어 없어졌다. 자연히 물길도 메워졌다. 먹이 사슬의 생성과 소멸을 목도하게 된 것이다. 초기엔 슬리퍼를 신고 다녔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안전한 등산화를 신게 됐다. 오가면서 머리를 자주 부딪히게 돼 모자를 쓰게 됐다. 적응하는 과정에서 생각도 변하고 모습도 많이 변하게 되었다.
시골의 노년은 배움으로 바쁘다. 또 노년은 생산보다는 소비의 시기이다. 근면하게 살면서 소비를 잘 하면 된다. 퇴직 이후 오랫동안 소비자로만 살아왔다. 가끔은 돈을 버는 제안이 들어왔지만 수락하지 않았고 대신 쓰지 않는 생활로 버텨왔다. 한편으로는 내가 일하면 다른 사람의 일자리를 뺏는 것이라는 생각에 응하지 않았다. 노년은 나를 위해서 사는 시기다.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보고 싶은 것을 보고, 가고 싶은 곳에 가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즐거운 때라고 생각한다. 당당하게 큰소리 치고 싶다. 노년은 그런 때라고. 여행을 하다보면 ‘어르신’ 하면서 다가와 도움을 주는 이들이 고맙다. 내 몸과 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주위 사람이 챙겨준다. 그런 마음이 고맙다.
젊은 날에는 슬픈 영화를 봐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노년은 그 반대다. 작은 감동에도 눈물이 절로 난다. 영화나 TV에서 조금이라도 슬프거나 감동적인 장면이 나오면 눈물을 쥐어짜며 즐긴다. 모든 노년의 마음에는 청춘으로 가득차 있다. 그 청춘으로 남은 세월을 즐겁게 보내면 된다. 노년의 사고에서 벗어나 청춘의 마음으로 한가로움을 즐기는 한량이고 싶다. 더 나아가 모든 것을 즐기는 풍류인이 되고 싶다. 악기 한두 가지를 익혀 연주를 하고, 독서와 글쓰기로 자신을 가꾸어 나가며, 낯선 곳을 찾아나서는 여행을 하면 얼마나 즐겁겠는가. 이런 나날이 계속되는 노년의 시간이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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