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역사의 물줄기는 평범한 소시민의 삶을 어떻게 뒤흔드는가.

오성인 시인의 에세이 ‘세상에 없는 사람’(걷는사람刊)이 출간됐다.

1980년 봄, 상병으로 군대에 복무하던 시인의 아버지는 상부의 명령에 따라 박달나무 방망이를 만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방망이가 5·18 때 시민을 제압하는 계엄군의 ‘충정봉’으로 쓰였음을 알게 되며 큰 충격에 휩싸인다.

제대 후 대학생으로 돌아갔지만 더 이상 그는 예전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 없었다. 자신이 아끼던 친구와 선후배들이 계엄군으로부터 당한 상처를 보며 자신이 곧 가해자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는 끊임없이 절규했다. 국가폭력에 동조했다는 죄책감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고, 그는 지금까지도 속죄하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독에 가둔 채로 살고 있다.

이 하나의 사연을 놓고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1980년대, 거대한 독재정권의 폭력 아래에서 수많은 시민과 학생과 군인이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됐다. 비단 80년대만이 아니다.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는 수많은 무고한 사람의 생명과 영혼을 앗아갔다.

하지만 몸에 입은 상처도, 정신에 입은 상처도 국가는 제대로 돌봐 주지 않았고, 광주 시민 학살의 가장 큰 책임자는 사과 한마디조차 하지 않고 떠났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오월의 깊은 상흔을 보듬고, 평화를 염원한 광주항쟁의 정신을 계승하고 확장하려는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다.

시인은 책 속에서 끊임없이 왜 ‘오월’을 이야기해야 하는지, 어째서 광주를 말할 수밖에 없는지 지난 시집에서 차마 다 꺼내지 못했던 사연을 밝힌다.

오성인 시인은 “이 글은 곧 내가 평생 짊어지고 가야만 하는 짐이자 충정봉을 만들어 계엄군 손에 쥐여 준 가해자의 자식으로서 광주와 오월 영령들에게 드리는 속죄다. 사소하고 평범한 소시민의 일상이 어떻게 역사로 편입되는지 이야기하고 싶었다”며 “이 책이 어떤 도화선이 돼 발포 명령자 등 여전히 지지부진한 오월의 진실이 밝혀지고, 가해자들의 사죄가 이뤄진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고 말했다.

/최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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