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남구 사동 옛 녹성상회 활용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토론회가 지난 18일 광주매일신문 본사에서 민·관·학계 전문가들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김애리 기자

1930년대 초 학생운동가 김후옥에 의해 광주 남구 사동에 설립된 녹성상회는 ‘일제 저항정신’이 깃든 곳이다. 현재 공실 상태의 녹성상회 활용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토론회가 지난 18일 광주매일신문 본사에서 ‘녹성상회 건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주제로 열렸다. 민·관·학계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인 이번 토론회에선 우선 김후옥의 발자취와 녹성상회의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했고, 관광 상품 등과 연계해 지역경제 활성화 등을 이끌 수 있는 의견 및 제언 등이 나와 귀추가 주목된다.

◇좌장=▲김덕진 사직문화보존시민모임 공동대표·광주교대 교수
◇주제발표=▲조광철 광주역사민속박물관 학예연구실장
◇토론=▲박종찬 사직문화보존시민모임 운영위원장·광주대 교수 ▲오영순 광주 남구의회 의원 ▲정광민 건축사사무소 서로 대표


●주제발표=조광철 광주역사민속박물관 학예연구실장
“항일·에스페란토 운동 관련 유일 건물…역사적 사료”

녹성상회는 광주의 원도심에 위치한 일제강점기 시대 건물로 김후옥이 운영한 상점이자 체육 활동의 중심지로 사용된 곳이다. 이에 녹성상회 보존은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통합하고 당시 시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료를 지킨다는 점에서 필요성이 높다.

녹성상회가 갖는 역사적 의미 재조명을 위해선 설립자 김후옥을 먼저 들여다 봐야 한다.

김후옥의 생애는 주로 구전을 통해 전달됐는데, 남겨진 자료가 많지 않아 불분명한 부분도 더러 있으나 확실한 것은 그가 광주 출신이라는 점이다.

수기동에서 태어난 김후옥의 생애 전반에는 체육, 특히 유도가 자리하고 있다.

서울YMCA에서 ‘장권’에게 유도를 배운 김후옥은 1930년 초반 광주로 돌아왔다. 이후 숭일학교에서 체육부를 운영하다 ‘무자격 유도 사범’이라며 일제의 핍박을 받아 반강제적으로 손을 떼야만 했다.

이에 김후옥은 서울 소공동 소재 ‘강도관’에서 정식으로 유도 사범 자격을 획득한 뒤 광주로 돌아왔다.

이후 그는 현재는 터만 남아있는 녹성상회를 열었고, 건물 뒤편에선 체육관을 개설해 유도부를 운영했다.

당시에도 김후옥은 광주YMCA 유도부 운영 전반에 함께했으며, 1932년 ‘광주보건구락부 유도부’를 창설했고 1933년 ‘소년척후대 조선총연맹’에 가입하는 등 광주지역 청년·소년 운동에 기여했다.

1931년 초 문을 연 것으로 추정되는 녹성상회는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자본으로 생산된 물건을 판매해 일본 제품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조선의 경제적 자립을 도모하는 조선물산장려운동이 전개됐다는 점에서 공간이 갖는 의미도 크다.

또한 녹성상회는 광주에서 ‘에스페란토 운동’과 관련된 유일한 건물이며, 뒤편의 체육관은 광주 근대 체육의 태동지나 다름없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높다.

에스페란토어는 국가간의 이해와 평화를 추구하고자 만들어진 공용어로, 일제강점기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문학·교육·국제 교류와 민족 해방을 위해 사용됐다.

‘녹성’은 에스페란토의 상징으로 초록색은 희망을, 별은 5대륙을 의미한다.

이에 녹성상회의 설립자인 김후옥 역시 에스페란토 운동의 영향을 받은 인물로 평가되는데, 그가 서울YMCA를 출입했을 때 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후옥이 에스페란토 운동에 얼마만큼 열정적으로 관심을 기울였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김후옥이 생전에 녹성상회의 ‘녹성’이 에스페란토에서 따온 것이라고 명확히 밝혀 연관성은 분명하다.

이러한 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녹성상회는 현재 광주 도심에 남아있는 일제강점기 시대 건물 중 유일한 상업 건물이라는 점에서도 보존의 필요성이 높다.


●박종찬 광주대 호텔관광학부 교수 “광주천 중심 문화관광벨트 형성”

문화자원은 역사유적자원과 창조적 예술자원으로 구분되는데, 녹성상회는 전자에 속한다. 역사유적자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보존과 발굴, 활용 방안이다.

보존의 경우 활용 가치가 있는지 따져봐야 하는데, 녹성상회는 광주 청년운동의 산실이라는 의미가 분명해 ‘광주 청년운동의 재조명’이라는 큰 맥락 속에서 보존가치를 찾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여기에 지역 관광 자원을 더한다면 그 가치는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천년선비골이라 불리는 남구 사직동에는 수많은 역사유적자원이 있다. 그 중심에는 사직단, 향교, 희경루가 있는데 녹성상회와 함께 이를 통합해 인접해 있는 양림동과 차별화되는 마을 이미지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

아시아문화전당과 10여분 거리에 위치해 있는 것도 지리적 장점이다. 이에 광주천을 중심으로 아시아문화전당-양림동-사직동을 하나의 문화관광벨트로 형성하는 것을 제안한다.

이를 위해선 각 지역의 스토리를 만들고 이에 맞는 특화 상품을 개발한 뒤 홍보하는 등 행정의 뒷받침이 필수다.


●오영순 광주 남구의원 “역사재현극 통해 이야기 보존·활용”

녹성상회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명확한 조사를 실시하고 이를 주민들에게 널리 알리는 게 필요하다 생각된다.

건물의 활용 방안으론 녹성상회와 김후옥의 서사를 이야기하는 공간으로 재사용하는 것을 제안한다.

강진군에선 지역민 스스로 ‘사의재저잣거리 마당극’을 운영하며 ‘강진 조만간(조선을 만난 시간)’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는데, 이를 벤치마킹해 일제강점기 시대 ‘녹성상회와 김후옥’의 이야기를 담은 역사재현극을 만들어 공연하는 것이다.

올해 남구의 주민참여예산사업으로 ‘양림역사재현극’이 선정된 것처럼 민간 차원에서 지속 관리하기 위해 필요한 운영 예산도 지원 가능하다.

이러한 역사재현극을 통해 기삼연 의병장 처형지인 광주천변과 지역 내 3·1운동지인 큰장과 작은장터 등을 이어 광주천 인근의 ‘근대역사길’을 확장하는 것도 좋은 활용 방안이 될 수 있을거라 생각된다.


●정광민 건축사사무소 서로 대표 “과거 흔적 통해 원형 보존·재사용”

건축물은 생활상이 담긴 그릇이다. 녹성상회의 경우 현재 건물 외형만 남아 있어 그 흔적을 따라 당시 생활 양식을 추정해야만 했다.

양림동과 사직동은 일제강점기 시기 유산이 남아 있는 곳이다.

그중 녹성상회의 경우 당시 서양식 목조건물로 2층 바닥 틀과 지붕이 그대로지만 근대에 사용이 불편한 점을 개선하고 실내 공간을 넓게 쓰기 위해 1층 내부의 목재 기둥을 없애고 철골재가 설치된 상황이다.

다만 그 외 부분은 보존돼 있어 현대적 재료를 사용해 구조적인 보강을 하고 화장실, 계단 등 내·외부로 일부 편의 구조 보강을 하면 활용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외형을 포함해 모두 보수·보강해 재사용하는 방법도 불가능하진 않을 것 같다.

건축물의 원형을 보존하면서 현대적 요구에 맞게 리모델링하고 내부 전시를 통해 방문객들에게 과거와 현재를 잇는 교육적이고 문화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방법도 있다.

/정리=주성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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