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28일(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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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의 그리움과 항아리
김도영
드영미술관장

  • 입력날짜 : 2020. 02.20. 18:23
옛 시절을 떠올리면 절로 미소가 나온다. 행복의 세계로 나를 데려다 주기 때문이다. 어디 그게 나뿐이랴. 적잖은 이들이 그럴 것이다. 누구에게나 추억의 나래를 펴게 해주는 매개체가 있기 마련이다. 내게도 그런 게 있다. 항아리다. 항아리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터널 역할을 한다. 항아리만 보면 그토록 소중하다. 그래서였을까. 최근 나는 항아리를 즐겨 그린다. 줄기차게 항아리를 부여잡고 있다. 항아리가 내 마음을 붙들어 매었다. 어김없이 내 그림엔 항아리가 등장한다. 단순히 항아리만 그리지 않는다. 정물화에 끼워 넣는가 하면 풍경화에도 가만히 항아리를 집어넣는다. 그런 내 그림을 본 이들은 고개를 갸우뚱하곤 한다. 왜냐고. 왜 항아리를 쌩뚱맞게 그려넣느냐고. 다들 궁금해하며 묻는다.

항아리에 대한 기억은 아주 아주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 이미 항아리는 내 마음을 빼앗았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어머니는 거기서 뭔가를 꺼내주시곤 했다. 맛있는 먹거리였다. 사과, 오꼬시, 꽂감, 땅콩 등 온갖 맛있는 것들이 거기서 쏟아져 나왔다. 항아리는 요술 항아리였다. 그 후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난 뒤 항아리는 곧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추억의 매개체가 되었다. 그리움의 대상인 것이다. 넉넉한 어머니의 품이 항아리와 일치되어 내게 다가들었다. 항아리는 단순히 추억의 물건을 뛰어넘어 어머니에 다름 아니다.

항아리는 꼭 행복만은 아니다. 가슴 아픈 그리움의 자락이 묻어나기도 한다. 때로는 그리움이, 때로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가슴 짠함이 동시에 항아리에 실린다. 그게 기쁨이건 슬픔이건 그리움의 끝자락을 붙잡고 나는 날마다 캔버스에 항아리를 그려넣는다. 그 항아리는 무작위로 들어간다. 무등산 위에도, 나무에도 항아리가 놓인다. 무조건 항아리다. 그건 추억이고 어머니이며 결국엔 ‘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항아리 뿐 만이 아니다. 내가 그리는 모든 그림엔 유년 시절의 자락이 살포시 담겨있다. 그리움인지 아쉬움인지 어린 시절 추억을 가닥가닥 풀어내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그리고 그걸 들여다 보노라면 즐겁다. 꽃, 나무, 새, 하늘 등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대상이다. 어린 시절의 추억과 함께 다시 캔버스에 재현되며 저 멀리 가버린 시절로 유영하는 기분을 느낀다. 희망과 행복, 그리움과 추억, 따뜻함과 포근함 등이 가만히 나를 감싼다.

아, 가만 있어보자. 옛날 새참 내가는 때 따라갔던 논에서 볏짚 위에 누워 있곤 했던 때가 떠오른다. 살풋 잠이 들면 종달새 울음소리가 들리고 일하는 분들의 이야기 소리가 귀에 쟁쟁하게 들려온다. 행복감이다. 그 시절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행복해진다. 그래서 그 때의 단편들을 하나씩 끌어다가 그림의 소재로 삼는다.

만학도로 반백이 넘어 그림 공부를 다시 시작하길 정말 잘 했다고 여긴다. 그렇지 않았으면 이렇게 가슴을 뒤흔드는 추억의 갈래 갈래를 어떻게 처리 했을까. 날마다 붓을 들고 항아리를 그리며 거기에 추억을 담아내는 일이 정말 행복하다. 가슴에 파닥이는 꿈은 그림이었으되 거기에 담아내고 싶었던 것은 흘러가 버린 추억의 시절이다. 추억과 행복, 그리고 꿈을 담아내는 붓질이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그 추억을 끌어올리는 일상이 오늘을 짱짱하게 버티게 해주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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