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출범과 함께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역시 남북관계라고 할 수 있다. 2018년 4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판문점 회담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으며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일순간에 잠재우는 효과를 가져왔다. 문재인 정부의 집권 후반기 안정적인 지지율의 바탕에는 한반도 평화정착을 실행하는 운전자론을 기반으로 남북의 긴장완화와 경제협력에 대한 기대감이 자리 잡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2019년 2월,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하노이 회담 이후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북한으로서는 미국과 유엔의 경제제재를 완화시키기 위해 나름대로의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았지만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요구하는 미국의 요구로 회담은 파행적으로 막을 내렸다. 이후 남북 간의 경제교류 역시 미국의 강력한 반대에 막혀 답보상태를 이어가게 되었다.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전 세계를 꽁꽁 얼어붙게 만든 코로나19의 발생과 확산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과 유엔의 봉쇄조치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그야말로 정권을 유지하기도 버거울 정도의 극심한 난관에 봉착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강력한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중국과의 국경봉쇄와 경제교류 축소는 북한 경제에 막대한 타격을 입히게 되었다.

특히 10월은 북한 노동당 창당 70주년이 되는 상징적인 해이기도 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입장에서는 북한의 발전을 통한 집권 능력을 대내외에 과시할 필요성이 절실한 시기인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북한의 변화를 상징하는 사업들이 대대적으로 추진되었다.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과 사망설이 나도는 가운데 직접 준공식에 참석한 비료공장을 비롯해서 의료선진화를 위한 평양종합병원 건설, 관광산업을 통해 경제를 살리겠다는 역점사업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사업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과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모든 사업들이 사실상 중단되면서 북한 정권의 위험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전망이 제기될 정도로 심각한 국면에 몰리게 되었다. 그 와중에 치러진 4·15총선에서는 북한의 아킬레스건이라고 할 수 있는 탈북자 출신들이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충격적인 상황까지 맞게 된 것이다. 아무리 철저하게 감추고 숨긴다고 해도 이러한 소식들은 북한에도 퍼질 수밖에 없다. 소위 ‘삐라 살포’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상황이다.

결국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나섰다. 김 제1부부장이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비난하며 거론했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폐쇄는 현실로 나타났다. 앞으로는 개성공단 완전 철거, 9·19 군사합의 파기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엄중한 상황에서 남한의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사의를 표명했다. 취임 후 약 1년 2개월 만에 물러나게 된 김 장관의 사의 표명은 정부의 변화를 의미한다. 뒤이어 나오고 있는 외교 안보라인의 교체 역시 보다 적극적인 정책 추진의 신호라고 할 수 있다.

때를 맞춰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미국을 방문한다. 워낙 급박한 시기에 이루어진 일정이어서 구체적인 동선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과의 협의를 통해 이전과는 다른 남한의 북한접촉을 주장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한미워킹그룹’의 역할을 축소하거나 북한에 대한 제재 중심에서 교류중심으로 방향전환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그와 같은 주장을 관철시키지 못한다면 남북관계는 파국을 면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북한이 막다른 길에 처하게 되면 그 상대인 남한 역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한반도의 특수성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제라도 남북한의 문제는 당사자가 나서야 한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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