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 사상 처음으로 초(超)거대 여당 탄생과 더불어 21대 국회의원 임기가 지난달 5월30일 시작됐다. 그리고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이 불참한 가운데 여당과 군소정당이 합작해 53년 만에 제날짜(6월5일)에 국회 개원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원 구성마저 코로나19란 국난의 와중에도 국회 법사위원장 자리와 상임위 배분을 놓고 여야가 협치 대신 갈등을 빚다 끝내 여당 단독으로 주요 상임 위원장을 선출하고 말았다. 특히 21대 국회는 야당의 여당 발목 잡기나 몽니가 통할 수 없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미래통합당은 명분 없는 자기주장과 아집으로 결국 실리와 명분 두 가지 모두를 잃었다. 대한민국 국격은 이미 선진국 대열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데 국회만은 여전히 후진(後進) 4류 신세다.

국회 역사상 최악의 국회로 낙인찍힌 지난 20대 국회를 되짚어 보자. 법안처리율은 제출 법안 중 겨우 36.6%만 처리되었고, 나머지 63.4% 법안은 20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다. 이는 20대 국회 이전, 최악의 국회로 평가됐던 19대 국회의 법안처리율 41%보다도 낮은 수치다. 이 같은 결과는 20대 국회가 임기 4년 내내 국회 본연의 책무를 저버린 채, 당리당략과 사리사욕에 집착해 장외투쟁과 파행을 밥 먹듯 일삼았다는 사실을 계량적으로 입증한 것이다. 그런데도 여야 불문하고 의원들은 매달 세비와 각종 수당을 한 푼도 빠짐없이 꼬박꼬박 챙겼다. 국회의원들에게 ‘무노동 무임금’은 특별한 나라의 이야기일 뿐이다. 오죽했으면 인터넷과 SNS에서 국회의원을 개에 빗대 ‘국개(犬)의원’으로 희화화하고 있을까.

그런데 계획된 일 가운데 63.4%가 실행되지 않고서도 살아남을 기업이나 개인이 과연 있을까 싶다. 일반 기업체였다면 아마도 파산했을 것이고, 개인 같았으면 실패자의 멍에를 썼을 것이다. 그런데 제출된 법률안 중 63.4%가 처리되지 않은 대한민국은 무탈하고 조용하기만 하다. 법안 통과율이 떨어졌다고 GDP가 감소했다거나, 빈곤율이 갑자기 증가했다거나 하는 언론 보도나 시민단체의 시비가 없으니 말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국민으로부터 가장 신뢰받지 못한 정부 기관 1호가 국민을 선도하고 이끌어야 할 ‘국회’다. 그렇다고 국민이 국회를 처음부터 불신한 것은 결코 아니다. 국민이 불신할 수밖에 없도록 국회가 자초했다. 정작 국회의원들은 그들만의 고유한 카르텔 속에 안주하며, 국민을 외면하고 회피해 왔다. 그래서 선거날 하루만 유권자가 ‘갑’일 뿐, 선거가 끝남과 동시에 유권자는 개, 돼지로 전락하고 만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정치판에 갈등과 이해가 존재하는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다. 문제는 갈등과 이해의 조정이 얼마나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이루어지느냐에 달려 있다. 민주적 절차란 끊임없는 대화와 토론에 의한 타협과 절충이며, 표결을 통한 다수결의 관철이다. 그러나 그동안 한국 정치는 여야를 막론하고 당리당략 우선주의에 매몰된 채, 극단적 대립과 갈등, 그리고 자기주장과 흑백 논리로 일관해 왔다.

그러나 21대 국회는 20대 최악의 국회를 반면교사로 환골탈태(換骨奪胎)해야 한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등 김정은 남매의 광기 어린 작태가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고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그런데도 이를 모르쇠로 일관하며, 여야가 국회를 지금처럼 비정상적으로 운영한다면, 국민은 국회를 더더욱 불신하고 외면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여야가 싸워야 할 일이 있다면 장외가 아닌 국회 안에서 사생결단해야 옳다.

미래통합당은 사사건건 반대만을 위한 반대로 하세월 할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라도 수권 예비 정당으로서의 대안을 제시하고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차곡차곡 쌓아가야 한다. 그러나 미래통합당의 미래는 참담하다 못해 답이 없어 보인다. 철새, 부패, 한물간 경제이론가를 비대위원장으로 앉혀 놓고 21세기 당의 미래를 설계하겠다는 자체가 한 마디로 국민을 무시하고 기만하는, 또 다른 코미디이기 때문이다.

여당도 예외가 될 수 없다. 21대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개헌을 제외하고 모든 일을 할 수 있도록 압도적인 의석을 몰아준 까닭은, 지난 집권 3년 동안 정부 여당이 정치, 경제를 잘 이끌어 와서가 아니다. 남은 대통령 임기 2년 동안 열심히 잘해보라는 유권자들의 준엄한 명령이자, 국민의 뜻에 반할 때는 언제든 책임을 묻겠다는 암묵적인 경고이기도 하다. 따라서 국민과 국가를 위해 온당하고 정정당당한 일이라면, 어차피 반대 세력은 존재하는 까닭에 이 눈치 저 눈치 보지 말고 과감하게 밀고 나가야 한다. 국민이 부여해 준 힘을 정당하게 사용하는 것이 바로 국민의 신뢰를 얻는 지름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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