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고 싶다. 고위공직에 뜻이 있거나, 선출직에 출마하려거든 주택은 한 채만 소유해야 한다. 이러한 기본 원칙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권의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고, 다음 정권에서도 지속되어야 한다. 정부의 정책을 만들고 실행하는 고위 공직자는 재산과 관련한 국민의 신뢰를 원칙으로 해야 한다. 공직이 부의 축적으로 귀결되는 순간 국가와 정책에 대한 존재가치가 훼손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장경제에 있어서 자본의 특성을 이해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마치 스펀지에 물이 스미듯이 자본은 이익을 향해 빠르게 움직이는 특성을 갖고 있다. 또한 비유할 데가 없이 냉정하고 예리하다. 특히 21세기 시장경제에서 글로벌 시스템의 촘촘함과 거대함도 갖추고 있다.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19의 파급력이 순식간에 전 세계 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주는 것처럼 세계 경제는 국경의 구분과 장애를 뛰어넘은 지 오래다. 정부의 정책만으로, 학계의 이론과 논리만으로 맞서기에는 버거움이 있다. 그래서 정부의 정책은 늘 시장의 인식을 파악하고 소통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정부의 22번째 부동산 정책은 아쉬움이 크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대통령과 함께 정부를 책임지고 있는 청와대 고위인사들의 처신에 실망이 크다. 오래전 스스로가 한 채의 아파트를 제외하고 팔아야 한다고 얘기했던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수개월이 흐른 뒤에도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국민들의 질타와 언론의 비판이 거세지자 부랴부랴 한 채를 정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것도 서울에 있는 아파트는 남기고 지방의 아파트를 팔겠다는 발언으로 곤경에 처하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청와대 고위공직자 상당수가 아직도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적극적으로 앞장서는 모습이 보이지 않고 있다.

비단 청와대만이 아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만들고 실행하는 중앙부처 고위공직자의 아파트 보유 현황이 알려지면서 국민들의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 자기 자신부터 다주택자인 상황에서는 어떤 명분과 논리로도 아파트 투기를 탓하고 강력한 정책을 펼칠 수 없다. 거기에 더해 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해야할 일부 국회의원까지 다주택 소유로 논란을 일으키고 있으니 국민들로서는 말 그대로 공직윤리와 자정능력의 붕괴를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는 심리적인 요인이 가장 크다. 심리적 요인을 결정짓는 것 중에는 정부와 정책에 대한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번 내놓은 정책은 여간해서는 바뀌지 말아야 한다. 만약 그 정책이 시장의 신뢰와 지지를 얻지 못했다면 그에 따른 사과와 당연히 책임지는 모습으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그 이유는 하나의 정책을 내놓기까지 그만큼의 엄중함과 치밀함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후 3년이 지나는 동안, 정확하게는 2017년 6월19일 첫 번째 대책부터 2020년 7월10일까지 모두 22번의 부동산 관련 대책을 내놓았다. 대략 한 달에 한 번의 정책을 내놓은 셈이니 정책의 엄중함과 치밀함을 논하기엔 머쓱하다.

현행 헌법에 의하면 국민의 선택으로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게 되면 5년 동안의 임기를 부여받고 그 기간 동안 다양한 정책을 펼치게 된다. 어떤 정책은 국가의 흥망성쇠를 결정짓는 그야말로 중차대한 결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5년의 집권으로 수백 년, 아니 수천 년을 이어온 자본의 본질과 시장의 흐름을 억누르고 변화시키기는 데에는 일정부분 한계가 있다. 그 정권이 임기를 다하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또 다른 정책이 요구되고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더욱 디테일한 정책의 변화보다 중요한 것이 정부의 기본 원칙이라는 큰 틀이 만들어지고 유지되어야 할 필요성이 커지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금이라도 부동산 관련 고위공직에 대한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 더더욱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다. 국민들은 기다리고 있다. 23번째 부동산 정책이 아니라 정부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단호한 원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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