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록 전남대 교수·前 대한지리학회장

해남군 화산면 관동리는 해남반도 서남쪽에 위치한 어촌마을이다. 120여 가구에 230여 명이 살고 있으니 결코 작은 마을이라 할 수 없다. 관두산(館頭山) 동쪽 아래에 있다고 해서 관머리 또는 관동(館洞)이란 별칭도 있다. 해남읍에서 19㎞ 정도 떨어졌고, 승용차로 15분 정도 걸린다.

필자는 얼마 전까지 관동리를 알지 못했다. 가본 적도 없었다. 학생들과 땅끝(土末)과 이진(梨津) 일대는 수차례 답사했지만 관동리는 필자 답사 리스트에 없었다. 그랬던 필자가 요즘 관동리를 자주 간다. 지난주엔 화요일과 금요일 두 차례나 갔다. 금요일엔 30-40대 젊은 어촌계원들과 술잔도 함께 기울었다. 한국어촌어항공단이 발주한 ‘관동항어촌뉴딜기본계획’ 용역과제의 총괄 연구 책임을 맡아서다.

지금의 관동리는 여느 농어촌 마을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과거엔 아주 잘나갔다. 고려시대엔 관두량(館頭梁)으로 불렸고, 송나라와 관(官)무역이 행해진 대중국 무역항이었다. 조선시대엔 인접한 이진(북평면)과 함께 한양-제주를 연결하는 관항(官港)의 시종(始終)점이었다. 세종실록에 의하면 1429년(세종 11년) 관두포에 제주로 출장 가는 공무원을 위한 숙박시설 ‘해진성관’이 설치됐고, 출입항 관리와 제주산 공마(公馬) 사료보급 업무를 봤던 곳이다.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로 유배를 떠났던 포구도 관동항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관동항은 완전 딴판이다. 옛 영화(榮華)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1967년 화산면 관동리와 평호리를 잇는 관동방조제가 완공되고 화산천 직관(直管) 공사로 해진성관이나 영(營)터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관두산 동쪽에 있었던 포구가 관두산 서쪽 끝단으로 이전됐으니 어떻게 됐겠는가. 규모나 시설이 형편없이 쭈그러들었을 것은 자명하지 않은가.

관동항어촌뉴딜기본계획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 조충현 위원장을 만났다. 관동 토박이인 그는 올해 55세다. 촌에선 보기 드문 미남이자 멋쟁이였다. 게다가 교회 장로다. 젊은 시절 광주에서 보낸 9년을 제외하곤 지금껏 관동서 살고 있다. 영광 출신 순박한 소녀와 결혼해 1남1녀를 뒀다. 연말에 결혼식을 올릴 아들과 함께 벼농사와 김 양식을 한다. 벼농사 면적만도 2만여 평에 달하는 대농(大農)이다. 작년 순소득은 얼추 1억6천만원에 달했다. 억(億)대 농어업인이다.

등치에 어울리지 않게 보조개를 가진 조충현 위원장은 직함이 3개나 된다. 관동리 이장, 관동어촌계 계장, 관동항어촌뉴딜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지역협의체 공동위원장 등이 그것이다. 필자가 조충현 위원장에게 물었다. “왜 혼자 감투를 독식하느냐”고. 그의 대답은 이렇게 돌아왔다. “교수님! 그래야 일이 됩니다.” “저는 도시에서도 살아봤지만, 농어촌도 괜찮습니다. 이곳에서 벼농사와 김 양식을 착실하게 하면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습니다. 저는 제 고향을 그렇게 만들고 싶습니다.”

조충현 위원장의 꿈은 이장을 맡으면서 펼쳐지기 시작했다. 선배들 등쌀에 못 이겨 2019년부터 이장직을 수행하며 정부의 재정지원 사업에 눈을 떴다. 마을주민들을 설득하고 추동해 균형발전위원회가 주관하는 2020년 새뜰마을사업 공모에 신청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2022년까지 마을 안길과 배수로 개선, 빈집과 노후주택 정비 등 생활여건 개조사업에 필요한 40억원을 확보했다. 마을을 일신(一新)시킬 수 있게 됐다.

조충현 위원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20년부터 관동리 어촌계장도 겸한 그는 해양수산부가 지원하는 어촌뉴딜사업에도 관심을 가졌다. 재작년에 신청해 고배를 마시고 작년에 다시 신청해 선정됐다. 약 89억원 사업비로 선착장과 선양장 신설, 공동작업장과 어구보관창고 설치, 어민복지회관 신축, 풍혈(風穴) 산책로와 체험장 조성 등을 계획하고 있다. 관동항 인프라를 개선해 어민들의 소득 증대를 꾀할 목적이다.

“저는 고향 후배들에게 도시에 나가지 않고도 이곳에서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고 싶습니다.” 조충현 위원장의 꿈이다. 꽃미남 아들과 벼농사와 김 양식을 하는 이유를, 돈이 안 되는 3개 직함을 수행하는 그의 뚝심을 알 것 같다. 조충현 위원장은 참으로 괜찮은 지도자였다. 조충현 위원장에 대한 청년층 어촌계원들 신망은 대단했다. 그런 지도자를 보유한 관동리 주민들은 든든할 것 같다.

조충현 위원장이 추동하는 관동항어촌뉴딜사업은 올해부터 시작해 2023년 끝난다. 2024년 관동항은 새롭게 탄생할 것이다. 조충현 위원장의 꿈을 보면서 관동이란 마을 공동체의 지속성을 확신한다. 소멸 위기에 처한 전남의 농어촌 마을에서 수많은 조충현 위원장이 활동하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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