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이슈
  • 정치
    • 정치일반
    • 2026 지방선거
    • 지방자치
  • 사회
    • 사회일반
    • 교육
    • 의료웰빙
    • 사람들
    • 창조클럽
    • 아름다운 사회 함께 만들어요
  • 경제
    • 경제일반
    • 지역경제·상권
  • 스포츠
  • KIA 타이거즈
  • 문화
    • 문화일반
    • 책
    • Fun·Joy
    • 2024 Art Bank
    • 문학마당
    • 빛고을 아트씬, 새로운 도약을 꿈꾸다
  • 특집
    • 기획
    • 토크&대담or인터뷰
    • 정사로 읽는 전라도 이야기
    • 김경수의 광주땅 이야기
    • 스타브랜드를 키우자
    • 몸에좋은제철음식
    • 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 번안시조
    • 일본작가 비평
    • 인재가 광주·전남의 미래다
    • 브랜드파워 지역발전 이끈다
    • 주민 손으로 만드는 광주 마을공동체
    • 70년대 민주화운동 사랑방 ‘봉심정’
    • 광주·전남 여성 경제인이 뛴다
    • 작은 손길 통해 큰 나눔으로 가는 길
    • 동인선생의 역경 강좌
    • '성공 신화 도전' 청년 창업가를 만나다
    • 안전먹거리 지킴이…유기농 명인을 만나다
    • '위기의 전남 쌀 구하자'··· 쌀 소비 촉진 향토업체 찾아서
    • 한빛원전 사용 후 핵연료…어떻게 저장할 것인가?
    • ‘글로벌 이주 허브’ 광주·전남 대전환 이루자
    • 노성태 원장의 남도인물열전
    • 전남 수업 대전환 ‘2030교실’
    • 2026 희망을 잇다
    • 정지효 여행작가의 남도투어 Happy-Bus-Day
    • 전남광주 초광역 통합시대, 미래 100년 새롭게 그린다
    • 호남 반도체 대전환, 대한민국 산업지도 바뀐다
    • 전남광주, 햇빛·바람연금으로 新에너지 시대 열자
  • 전남
    • 지역특집
    • 지역종합
    • 고흥
    • 곡성
    • 광양
    • 구례
    • 담양
    • 보성
    • 순천
    • 여수
    • 장성
    • 장흥
    • 화순
    • 강진
    • 나주
    • 목포
    • 무안
    • 신안
    • 영광
    • 영암
    • 완도
    • 진도
    • 함평
    • 해남
  • 오피니언
    • 사설
    • 시론
    • 구동에서
    • 아침세상
    • 기고&칼럼
    • 독자투고
    • 취재수첩
    • 문화난장
  • 포토
  • 주간만화(웹툰)
    • 국병석 작가
    • 송재영 작가
    • 정팽득 작가
  • 광주매일TV
정사로 읽는 전라도 역사기행
  • 경제일반
  • 지역경제·상권
검색 입력폼
  • + 즐겨찾기
  • 2026.10.15 (목) 13:42
  • 기사제보(독자투고)
  • |
  • 구독신청
  • |
  • 로그인
  • |
  • 회원가입
홈페이지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정사로 읽는 전라도 역사기행]광주의 자존심 지킨 이선제(李先齊)

[정사로 읽는 전라도 역사기행]광주의 자존심 지킨 이선제(李先齊)
‘무진군’을 ‘광주목’으로 승격시킨 광주향약 선구자
  • 2023. 07.05(수) 19:39
전라도 정도(定道) 천년을 기념해 156년 만에 다시 지어진 조선시대 목조 건축물 광주 대표누각인 ‘희경루’(喜慶樓)가 완공을 앞두고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다. 남구 광주공원 앞에 자리한 ‘희경루’는 1451년에 지어졌으며, 1533년 화재로 소실돼 이듬해 다시 지어졌지만 1866년 이후 다시 소실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시대에는 지금의 동구 충장로 광주우체국 인근에 있었지만 이번에 광주공원으로 옮기게 됐다. <광주매일신문 자료 사진>
1428년 7월22일, 4개월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자리에 누웠던 광주목사(光州牧使) 신보안이 광주목 관아(官衙) 처소에서 사망했다. 하루하루 건강이 나빠지더니 마침내 전염병인 ‘이질’(痢疾)에 걸려 숨지고 말았다. 직접적인 사망원인은 전염병이었지만 4개월 넘게 애첩이었던 관아기생(官衙妓生, 이하 관기) 소매(小梅)를 보지 못한 게 사인의 이유였다.

그해 봄, 광주목사로 부임한 신보안은 관아기생 소매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그러나 소매는 장군을 역임하고 은퇴한 노홍준의 첩이었다. 조선시대 관기는 신분은 천민이었지만 양반의 첩으로 들어가 화려하게 치장하고 자신의 미모를 뽐낼 수 있었다.

신임사또 축하 연회가 열리던 날, 소매를 본 신보안은 그녀의 고운 춤과 고고한 자태를 보고 마음을 몽땅 빼앗겼다. 환갑에 가까웠던 신보안은 사또가 살펴야 할 일은 뒷전이고, 오직 소매의 마음을 사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고을 원님의 힘이 막강한 터라 소매는 신보안을 거절할 수 없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몰래 사랑을 피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또와 소매의 불륜 스캔들이 순식간에 고을 곳곳으로 퍼졌고, 노흥준의 귀에도 들어가게 됐다.

성질이 급한 노흥준은 곧바로 관아 문을 박차고 들어가 사또 신보안을 죽지 않을 만큼 구타했다. 당시 사또는 행정권과 군사권, 그리고 사법권을 지닌 무소불위의 자리였지만, 불륜 앞에서는 아무 힘도 없는 사내에 불과했다. 더욱이 노흥준은 소매를 집으로 데려가 긴 머리를 잘라버리고 4개월 동안 관아에 나가지 못하게 하고 집에 가둬 버렸다.

관기는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지만, 일정 기간 관아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야 한다. 그러나 신보안은 노흥준에게 죄를 묻지도 못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숨지고 말았다. 이 사건이 조선 최초의 ‘수령 구타사건’이다. 이 소식은 신보안이 사망한 후 1년이 넘어서야 세상에 알려졌다.

‘수령 구타사건’ 빌미 무진군으로 강등 치욕

#1429년 세종 11년 11월13일 조정.

훗날 단종을 지키기 위해 수양대군(이후 세조)과 맞서다 계유정난 때 비운의 죽음을 맞이했던 좌의정 김종서가 이 사건을 세종에게 보고했다.

“광주목사 신보안이 고을 기생 소매와 간통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그의 서방 전 호군(護軍) 노흥준이 기생을 결박하고, 신보안을 능욕했습니다. 흥준이 질투 끝에 신보안을 때려서 그 이유로 죽었다고 합니다.”

보고를 받은 세종은 직접 사헌부와 형조, 두 곳에 조사하도록 지시했다. 신보안의 비서와 광주목 관아 향리, 노흥준이 소환되고 사건의 진상이 밝혀졌다. 형조와 사헌부의 보고를 받은 세종은 최종적으로 판결을 내렸다.

수령을 때린 노흥준은 장 1백 대를 때리고 강원도 변방의 일개 군영으로 쫓겨났다. 무엇보다 수령을 구타한 사건을 이유로 ‘광주목’ 지위를 무진군으로 강등시켰다. 즉 수령은 임금을 대신해 일하는 신하이기 때문에 어떠한 잘못이 있어도 수령을 고발하거나 구타해서는 안 되는 법을 당시 세종이 반포한 바 있다. 괘씸죄가 적용된 것이다. 계수관 장흥부의 지휘를 받도록 한 이 조치는 조선 최초의 ‘읍호강등’사건이다. 광주가 치욕스러운 불명예를 안게 됐다. 광주목의 지위는 나주목 다음이었는데, 장흥부의 지위를 받는 신세로 전락했다.

읍호 강등은 광주 사람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계수관은 중앙과 지방 사이를 연결하는 중간 행정기구로 관찰사의 지시를 받아 군, 현을 감독했다. 이후 광주 백성들은 20년 이상 광주의 지위를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

“사건의 발단이 애매해 위로는 산천의 귀신과 아래로는 향촌의 아이들까지 모두 억울함을 품고 있었으면서도 아무도 능히 그 일을 호소하지 못한지가 여러 해가 됐다.”

위 기록처럼 광주의 명망 있는 선비들이 여러 차례 세종에게 상소를 올렸으나 매번 거절당했다. 세종이 죽고 ‘읍호강등’ 20년이 지난 1451년(문종 원년) 여름, 예문제학 이선제(李先齊, 1390-1453)가 발 벗고 나섰다.

당시 좌의정 황보인과 가까웠던 그는 순성군 이개, 우참찬 안숭선, 이조판서 권맹손, 전 동지중추원사 유맹문 등에게 광주의 ‘읍호복원’ 정당성을 설파했다. 수차례 조정 대신을 찾아가 설득한 이선제의 노력 끝에 이개와 좌의정 황보인 등이 문종에게 상소를 올렸다.

“토지의 광대함과 인물의 번창함이 서남 여러 고을의 으뜸으로서 실로 전라도의 한 도회소(都會所)입니다. 구호(舊號)로 회복하도록 허가하여 경신(更新)할 길을 열어 주소서.”

‘읍호 복원’ 주역·희경루 창건에도 큰 역할

조정에서는 이선제가 나섰고 광주에서는 유향 품관과 인리(人吏) 등도 상소를 올렸다. 노력의 결과, 문종은 1451년 6월7일, ‘무진군’에서 ‘광주목’으로 읍호를 복원해 줬다.

이 시기에 광주관아에 누각을 짓고 있었는데, 소식을 들은 광주 원로들이 광주태수 안철석에게 누각의 이름을 건의했다.

‘함께 기뻐하고 서로 축하한다’라는 뜻을 담아 ‘희경’(喜慶)으로 누의 이름을 지어 기쁨을 기념하고자 청하였다. 지금의 ‘희경루’(喜慶樓)라는 이름의 어원이다. 읍호복원의 중심에 섰던 이선제도 ‘희경루’에 글을 남겼다.

“노소가 흔연히 경사스러움을 기뻐하니, 끝없는 이 즐거움 해마다 이어지기를(老少欣然然喜慶 願令此樂樂年年)”
1546년 증광시 문무과에 합격한 동기생 5명이 20년 후에 희경루에서 만나서 제작한 ‘희경루 방회도’ <보물 1879호·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희경루는 광주목 관아 누각으로 사또가 정무를 보는 건물이다. ‘희경루’의 원래 자리는 동구 충장로 광주우체국 옆이다. 1914년 무렵까지 남아 있었지만, 도시화로 인해 시내가 바라다보는 광주공원 한쪽에 새로 지었다.

이선제는 고려 마지막 왕인 1390년(공양왕 2년), 광주시 남구 이장동에서 태어났다. 1419년(세종 원년) 증광시에 급제한 이후 1453년(단종 원년)까지 30년 이상을 관직에 있었다.

6조의 관료와 강원도 관찰사를 역임한 후, 집현전 재직 당시 살펴본 옛 제도를 바탕으로 각종 정책 상소를 올리는 등 활발한 정치적 활동을 했다.

1450년(문종 즉위년), 세자우부빈객의 관직을 받는다. 세자우부빈객은 다음 임금이 되는 단종을 보필하는 관직이었다. 세자의 정무처결 기관이 설치되자 첨사원동첨사로 발탁된 이선제는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당시 이선제를 비롯한 집현전 학사들의 첨사원 관직에 등용되면서 집현전 출신 학자들이 정치 세력화하는 계기가 됐다.

단종을 보필하기 위해 조정에서 백방으로 뛰던 이선제는 과로사로 갑자기 숨을 거둔다. 향년 64세였다. 세상을 떠나기 바로 1년 전까지 ‘시의소’ 및 ‘단군신전건립소’를 올리고, 심지어는 중국 사신을 호송하는 반송사로 임명됐다.

1452년(단종 즉위년)에 올린 상소에 ‘천식으로 고생하고 있다’라는 내용이 실려 있어 죽음의 원인을 추정해 볼 수 있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이선제는 1453년(단종 원년) 겨울에 서울에서 사망한 뒤 이듬해 봄, 상여로 광주 만산동으로 옮겨 할아버지 무덤 옆에 장례를 치렀다. 지금의 남구 포충사 뒤쪽 산기슭에 묘지(墓誌)와 함께 부조묘와 신도비(神道碑)가 세워져 있다.

분청사기로 제작된 그의 신도비 ‘분청사기상감 이선제 묘지’는 1998년 6월 김포공항을 거쳐 일본으로 밀반출됐다가, 2017년 9월 일본인 소장가의 기증으로 국내로 환수된 문화재이다. 문화재청은 보물 제1993호로 지정했다.
‘이선제 분청사기 묘지’-일본에 반출됐다가 돌아온 문화재로 보물로 지정돼 있다.<국립광주박물관 소장>

이선제 묘지는 기축옥사(己丑獄死)에 연루돼 기록이 제대로 전하지 않은 그의 가계와 이력 등을 알 수 있게 해줬다. 또한 15세기경 변화하는 상장의례와 도자 기술, 서체 연구를 위한 중요한 편년작으로서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높다.

‘광주목’ 승격의 주역이면서 광주 최초의 향약도 그에 의해 실시됐다.

‘필문대로’…도로명이 된 광주의 큰 인물

현재 ‘광주 사거리’에서 ‘산수오거리’를 지나 ‘서방사거리’까지를 ‘필문대로’라고 일컫는다. 이 도로명은 바로 ‘필문’ 이선제(1389-1454)를 기리기 위한 거리명이다. 이선제가 어떤 인물이기에 광주의 큰길에 그 이름을 붙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신광재 역사문화 전문기자는 대학에서 한국사와 한국미술사를 공부했다.


▶ 디지털 뉴스 콘텐츠 이용규칙보기
실시간 최신뉴스
  • 2026-10-15 13:37외계인의 최애 - 26화
  • 2026-10-15 11:30외계인의 최애 - 25화
  • 2026-10-15 11:19외계인의 최애 - 24화
  • 2026-10-15 11:08외계인의 최애 - 23화
  • 2026-10-15 10:59외계인의 최애 - 22화
  • 2026-10-15 10:51외계인의 최애 - 21화
  • 2026-10-15 10:42외계인의 최애 - 20화
  • 2026-10-15 10:34외계인의 최애 - 19화
  • 2026-10-15 10:27외계인의 최애 - 18화
  • 2026-10-14 18:19영암서 ‘2026 코리아 월드 바이크 페스티벌’ 열린다
  • 2026-10-14 18:19전남광주시, ‘제31회 남도음식문화큰잔치’ 개최
  • 2026-10-14 20:19신정훈 “호남도 좀 먹고살게 둬라”
  • 2026-10-14 19:19볼거리 채워넣고 막바지 흥행 ‘총력’…섬 관광 연계는 숙제
  • 2026-10-14 20:18박균택 “5·18 배상액 최대 4배 격차…바로 잡아야”
  • 2026-10-14 20:19조인철 “KTX 6대 중 1대 꼴 지연 발생”
추천 뉴스
  • 정치아파트 앞 ‘오룡 AI데이터센터’…토지 분양에 밀린 주민 수용성…

  • 정치홍지선 국토부 장관도 15일 광주 군공항 방문

  • 정치신정훈 “호남도 좀 먹고살게 둬라”

  • 기획·이슈전남광주시 청사별 인력 ‘불균형’…업무 공백 어쩌나

  • 정치무안 국가산단 101개 기업 입주협약…공기업 참여 검토

정사로 읽는 전라도 역사기행 최신뉴스
  • 19:39

    [정사로 읽는 전라도 역사기행]광주의 자존심 지…

  • 19:43

    [정사로 읽는 전라도 역사기행] 조선의 모습을 …

  • 19:09

    [정사로 읽는 전라도 역사기행]‘최덕지의 초상…

  • 19:10

    [정사로 읽는 전라도 역사기행]조선판 ‘사랑과…

  • 19:40

    [정사로 읽는 전라도 역사기행]‘탐라사절’(耽…

회사소개 지사안내 윤리강령 편집규약 독자권익위운영규정 독자권익위원회 고충처리인제도 청소년보호정책 개인정보취급방침 광고문의 기사제보(독자투고) 구독신청
  • 광주매일신문(www.kjdaily.com) 문의 E-mail: webmaster@kjdaily.com 기사제보: jebo@kjdaily.com
  • 61636 광주광역시 남구 천변좌로 338번길 16 (구동 1-21)대표전화 : 062-650-2000팩스번호 : 062-650-2017
  • 2002년 4월 30일 등록. 등록번호 광주 가10(日刊)/인터넷신문 등록번호: 광주 아-00222 (등록년월일 2015.12.22) / 발행·편집인: 최재호 / 청소년보호책임자: 최재호
  • 광주매일신문(www.kjdaily.com)의 모든 콘텐츠(기사,사진,동영상 등)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