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슬기 作 'Hands'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은 5명의 아티스트들이 문학을 차용해 각자의 매체로 ‘애도’의 방식을 드러낸다.

포도나무아트스페이스 기획초대전 ‘우리: ‘소년이 온다’를 읽다’가 오는 7월13일까지 진행된다.

기슬기·신영희·안향희·오은미·정승원 5명 작가가 참여하는 이번 전시는 문학텍스트 읽기를 바탕으로 오월항쟁의 기억과 성찰, 애도의 지형을 형성하기 위해 기획됐다. 전시에서는 오월항쟁과 그 이후의 시공간에서 7명의 등장인물을 통해 기억의 공동체에서 훼손되지 않아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질문한다.

우리는 문학을 통해 현재의 해결되지 않은 시대적 문제를 환기하고 재인식한다. 텍스트를 읽는 독자는 자신의 경험과 지각행위를 동기화하면서 뒤따른다.

기슬기 작가는 소설 속 ‘너’에 대해 의식한다. 작가에게 ‘너’는 나와 간격을 둔 채 불가피하게 내 안에서 ‘현전하는 존재’다. 흑과 백으로 분리된 사진 속 그 경계를 가로지르는 것은 누군가의 ‘손’이다. 이는 한 사람일 수도 두 사람일 수도 있다. 그리고 손과 손의 제스쳐는 친밀성과 폭력이라는 두 겹의 의미를 고스란히 포개면서 그 대립하는 감정을 노출시킨다. 작가는 폭력 아래에서도 개인이 타자를 위해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는 ‘우리’의 존재에 대해 질문한다.

신영희 作 '나는 지금도 네가 있는 그곳으로 돌아가는 꿈을 꾼다'

신영희 작가는 애니메이션 작품 ‘나는 지금도 네가 있는 그곳으로 돌아가는 꿈을 꾼다’를 통해 그가 지각할 수 있었던 타자의 고통을 형상화한다. 작가는 영상을 5월의 광주와 연결함으로써 ‘남겨진 자의 애도’의 한 방식으로 자신의 수용을 드러낸다. 작가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고통 받는 이들을 잊지 않는 것이다.

안향희作 '슬픈 유산-한낮의 폭력'

안향희 작가는 1980년 5월 당시 도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살았던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다.

작가는 과자를 사러가다 농장다리에서 목격한 학생들과 군의 팽팽한 대치상황을 기억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텍스트를 플랫폼 삼아 한낮의 폭력에 맞섰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미지로 시각화한다. 이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살아남은 자로서 그가 목격한, 혹은 다행히 그와 자신의 가족을 피해간 한낮의 폭력을 되비춘다.

오은미 作 '유령'

오은미 작가는 검정 칠판 위 백묵으로 그려진 군상들의 모습을 영상 작품 ‘유령’을 통해 보여준다. 고요한 부동성을 두드러지게 만드는 것은 프로젝트 빔에서 투사돼 살인, 자살, 사고를 반복해서 연기하는 인물들의 애니메이션이다. 역설적으로 작품 속 ‘유령’들은 죽은 이들을 증언한다.

정승원 作 '간극-나는 왜 너를 몰랐을까?'

정승원 작가는 소설의 ‘이탤릭체’에 주목한다. 한국어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는 이탤릭체는 마치 저자가 다른 층위의 의미를 전하려는 것처럼 보이고, 따라서 맥락을 되짚으면서 읽는 속도를 늦추게 만든다. 그 과정은 어떻게 자신이 소설의 서사와 전혀 겹치지 않는 시공간을 살았는지, 왜 ‘너’를 전혀 모르고 살았는지에 대한 단서를 찾아 내면으로 떠나는 여정이자, 고백이다.

정현주 포도나무 갤러리 관장은 “전시에 참여하는 5명의 여성 아티스트들은 오월항쟁을 직접 마주친 세대부터 포스트 5·18 세대까지 다양한 세대를 아우른다”며 “저마다의 배경과 삶의 스펙트럼이 다른 이들을 하나로 엮는 키워드는 ‘애도’다. 비극에 대한 이들의 이해는 그와 같은 과거에 대해 현재의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찾는 행위로 이어진다”고 밝혔다. /최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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